첫 손길이 내려앉는 순간, 볼륨은 사라졌다
"와, 너 이렇게 가녀린 거 처음이야."
준혁의 손끝이 허리를 훑는다. 난로처럼 뜨거운 바람이 스친다. 나는 웃음으로 맞받아치지만 한쪽 가슴이 먼저 움츠러든다. 키스 한두 번이면 충분했다. 그의 숨결이 코끝에 닿는 순간, 나는 이미 스르륵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금요일마다 우리는 같은 지도 위에서 돌았다. 술집 → 키스 → 모텔 → 아침의 침묵. 똑같은 선 위를 반복할수록 내 몸은 ‘작아졌다’. 그의 손바닥 안에 여전히 머물렀지만, 몸뚱이는 점점 가루가 되어갔다.
그릇으로 남아 있기 위해 나는 스스로 물기를 뺐다.
미연이 아닌 나: 촉촉했던 28살, 메마른 29살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도 그를 만나러 달려갔다. 스커트 단추를 채우며 거울 속 내 얼굴은 아직 피곤을 먹지 않았다. 준혁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오늘 너무 늦었네."
"미팅 끝나고 바로 왔어."
"그래? 피곤해 보여."
그가 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끝이 가볍게 귀를 지나 뒷목에 닿는데, 문득 ‘나는 이 사람의 피로를 풀어주는 도구인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물소리만큼 커다랗게 숨을 죽이고 나니, 울음이 턱끝에 와 닿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침마다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점심은 친구들이 시켜놓은 샐러드를 겨우 두어 입. 저녁엔 준혁과 술 한 잔. 그게 전부였다.
"마른 게 섹시하다."
준혁은 여전히 그 말을 던졌다. 나는 그 말이 두려워졌다. 왜냐하면 나는 마르기 위해 ‘나’를 버리고 있었으니까.
금요일 새벽, 모텔의 조명이 꺼졌다. 침대 옆 스탠드 불빛 하나만 남았다. 준혁은 곤히 잠들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여자는 눈두덩이가 꺼져 있었다. 아랫입술은 갈라져 어둠이 스며든 흔적이 맺혔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틈을 살살 눌렀다. 아픈지도 모르게, 그저 시커먼 흔적이 남았다. 입술을 떼자 붉은 기운이 손끝에 어른거렸다. 나는 그걸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다시는 물기를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