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3시17분이다.
화장실 문이 희미하게 닫히는 소리, 서랍이 스르륵 열리는 감각적인 금속 소리, 그리고 지퍼. 여섯 번. 항상 여섯 번이다. 가방 안에 무엇을 넣는지도, 왜 여섯 번이나 지퍼를 여닫는지도 모른다.
침대 끝에 누워 나는 눈을 감은 척한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 어젯밤도, 제지난주도, 작년 이맘때도 같은 소리였다.
- 그녀는 가방을 싸고, 나는 그녀의 등을 미워한다.
그녀의 손끝이 닿는 모든 것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는 정리를 좋아한다.
화장대 위의 크림을 색깔별로, 향기별로, 나를 떠날 때 가져갈 순서로 배열한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처럼, 그러나 공격적이다.
"오늘은 립밤 두 개, 비누 하나, 그리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그녀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은 이별의 서약을 지닌다.
- 빨간 스웨터는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젠 구멍이 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접는다.
- 검은 정장은 내가 너무 커서 못 입는다고 했던 것. 그녀는 다림질을 하며 웃었다. "당신은 어디든 안 어울려요."
나는 왜 그녀를 막지 않을까?
아니, 나는 왜 그녀를 막고 싶지 않을까?
가죽 가방 한 켤레와 함께 살아온 847일
우리가 처음 침대를 나눠 쓴 건 2022년 4월이었다.
그녀가 "때로는 혼자 잠을 자야 할 때가 있어요" 라고 말한 날.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침대 옆에 삼각형 모양의 작은 테이블을 들여놓았다. 거기에 가죽 가방 한 켤레를 올려두었다.
847일째 그 가방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다.
- 첫날은 양말이었다.
- 사흘째는 목걸이.
- 한 달째는 지갑 전체를 비웠다.
나는 매일 확인한다.
오늘은 무엇이 사라졌을까?
그러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옮겨졌을 뿐. 그녀의 것들은 침대 아래, 서랍 안, 혹은 그녀의 몸 위로.
흔적 없는 이별을 연습하는 여자
지난 주였다.
그녀가 샤워를 하고 나올 때, 나는 욕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했다.
길이가 다르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깨를 살짝 넘기지만, 이건 훨씬 짧다. 내 머리카락보다도 짧다.
"이건..."
내가 물으려 하자 그녀는 재빨리 주워서 손에 쥐었다.
- "아, 오늘 동생이 놀러왔었거든요."
그녀는 동생이 없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거짓말이 그녀를 여기 머물게 만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떠날 준비를 사랑한다
매일 밤, 나는 그녀의 떠날 준비를 기다린다.
그녀가 가방을 싸고, 옷을 접고, 서류를 챙길 때마다 나는 더 깊이 사랑한다.
-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깝다.
- 집착이라기보다는, 의존에 가깝다.
그녀가 떠날 준비를 하는 이유는, 그녀가 떠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떠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녀가 떠나지 못하길 원한다.
우리는 이 무한루프를 결혼이라고 부른다.
침대를 나눠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는 침대 오른쪽에, 나는 왼쪽에 눈다.
가운데는 47cm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공간에는 모든 것이 있다.
- 그녀의 미래
- 나의 과거
- 그리고 우리의 현재
나는 이 47cm를 지키기 위해 밤마다 잠을 청한다.
그녀가 그 공간을 건너오지 못하게.
그녀가 그 공간을 건너가지 못하게.
왜 우리는 떠나지 못하는가
심리학자들은 공포라고 말한다.
- 떠나는 것에 대한 공포
- 남는 것에 대한 공포
- 그리고 그 사이의 공백에 대한 공포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공포가 아니라 욕망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그녀는 떠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싶은 욕망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우리의 욕망은 서로를 죽이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밤, 같은 의식을 반복한다.
그녀는 가방을 싸고,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본다.
오늘도 3시44분이다.
그녀가 침대 옆에 조용히 눕는다.
나는 눈을 감은 척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 천천히, 깊게, 그러나 불안하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그녀는 눈을 뜨지 않는다.
나는 속삭인다.
"오늘도 안 떠나니?"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질문과 침묵의 무게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떠날 준비를 끝낸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놓아줄 수 있을까?
오늘도 3시45분이다.
그녀는 잠든 척한다.
나는 깨어 있는 척한다.
우리 사이의 47cm는 여전히 비어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우리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