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이 날 찌를 때
밤 열한 시, 홍대 뒷골목. 너와 나는 아직 ‘그냥 친구’였다. 가로등 그림자가 연신 우리 사이를 흔들었다. 지나가던 커플이 멈칫하더니 힐끗 봤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꼬집으며 뭐라 속삭였고, 둘 다 우리를 향해 웃었다.
‘저게 뭘 봤을까?’ 라는 생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 미소가 목끝까지 차올랐다. 웃는 게 아니라 나를 보고 웃는 거였다. 한 사람의 눈빛이 너의 손등 위에 올린 내 손가락을 가리켰다.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속삭이는 상처, 그 깊이
그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이미 끝난 바람에 대한 복수였고, 아직 시작하지 못한 연애에 대한 예언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 속에서 내가 상상한 ‘우리’의 결말을 봤다. 연인들은 서로의 품에 안기며 이미 내일을 다 지켜봤다. 반면 난 오늘도 너의 친구라는 이름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순간, 불쑥 나도 모르게 너에게 물었다.
— 우리 언제까지 이럴 거야?
사례 1: 지하철 2호선, 10월의 미소
민지는 28살, 광고회사 AE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2호선을 탄다. 한 달 전부터 같은 칸에 서 있던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늘 회색 후드에 검은 에어팟을 꼽고 있었다. 같은 역에서 내린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민지는 이미 화요일마다 일부러 그 시간에 탔다.
지난주, 그 남자 옆에 여자가 붙어 있었다. 연인인 듯, 아닌 듯. 민지는 몰래 찍은 사진을 카톡방에 올렸다. 반응은 냉정했다.
— 그냥 썸인 거 같은데? 얼굴이 안 좋아 — 저 여자 표정, 확신이 없어
민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 여자와 다르지 않다는 걸. 그렇기에 더욱 그 미소가 아팠다. 아직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사례 2: 편의점 앞, 새벽 두 시
준호는 24살, 대학교 4학년이다. 봄방학 때부터 편의점 알바를 한다. 새벽 두 시, 문을 닫는 순간이면 한 여자가 잔돈을 바꾸러 온다. 항상 똑같은 말투, 똑같은 요망진 미소.
어젯밤, 그녀가 손에 든 반지를 내밀었다.
— 저, 아는 사람이 생겼어요. 이 반지, 어떻게 생각해요?
준호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반지는 둥근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준호의 눈빛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준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준호는 계산대 아래를 뒤져 스피커를 꺼냈다. 그 안에 녹음된 그녀의 목소리가 흘렀다.
“반지, 어떻게 생각해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건넨 적 없는 말이었다. 그것이 준호를 더욱 아프게 했다.
욕망의 본질, 금기의 늪
우리는 왜 남의 연인을 보면서 내 연애의 처음과 끝을 동시에 상상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관계를, 끝난 관계로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거리의 연인들은 이미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눈빛에서 미래를 읽는다. 아직 불안한 ‘우리’의 미래를. 그들은 오늘의 나를, 내일의 너를, 모레의 우리를 한눈에 보여준다. 끔찍한 결말을.
‘결국 우리도 저렇게 될까?’
이 질문은 우리를 애매 속으로 더 깊이 밀어 넣는다. 시작도 끝도 없는 늪. 그래서 더욱 아픈 것이다.
마지막 질문
너도 그들의 눈빛에 나를 가둬버린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