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감아줘"
밤 11시 47분. 서울 성수동의 한 34평 아파트 침실에서 지아는 남편 현우에게 말한다.
눈... 눈만 가려줘. 이번엔 네가.
현우는 머리맡 서랍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천천히 지아의 눈 위에 올린다. 다섯 번째 손수건. 첫해엔 스카프였다가, 세 번째 해엔 안대로 바뀌었다가 이젤 손수건이 됐다.
그녀의 숨이 뜨거워진다.
너무 질겨. 좀 더 부드럽게.
현우가 끈을 조이는 사이, 지아의 입술이 벌어진다. 입 안이 바짝 말라. 이제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섹스하는 법을 잊었다.
욕망의 얼굴은 두려움의 얼굴
우리는 왜 서로의 눈을 피할까.
결혼 5년차가 되면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너무 잘 안다. 눈 한뼘 위로 떠오르는 미간 주름, 코 끝의 홍조, 입술이 말없이 떠는 0.2초. 모든 표정이 너무 정확하게 읽힌다는 게 문제다.
지아는 알았다. 현우가 오르가즘에 가까워질 때 왼쪽 눈꺼풀이 미세하게 떠는 걸. 현우도 알았다. 지아가 위에서 앞을 보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는 게 가장 빨리 간다는 걸.
그래서 눈을 가린다. 비로소 안심이 되니까.
눈을 가리는 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그건 공포다. 남펵의 눈동자 안에서 '오늘도 실망했네'라는 한줄기 섬광을 목격할까 봐. 아내의 눈꺼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상상하고 있다'는 그림자를 읽을까 봐.
실화처럼 쓴 두 개의 밤
사례 1. "그녀의 눈을 본 건 마지막이었다"
2023년 3월, 부산 수영구. 34세 정은서는 남펵 김도진과 5년 만에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섹스했다.
너... 나 지금 봐.
도진이 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자 은서의 표정이 이상했다. 눈이 흔들리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눈에 슬픔이 번졌다.
섹스가 끝나고 은서는 울었다.
네가... 네가 나한테 실망한 것 같아서. 눈에 다 보였어.
그날 이후 다시는 눈을 안 뗐다. 실크 스카프 두 겹으로.
사례 2. "어둠 속에서만 내 이름을 불렀다"
2024년 1월, 인천 연수구. '준혁'이라는 가명으로 익명을 요구한 38세 남성은 아내와 4년째 눈을 가린 채로만 오르가즘을 경험한다고 했다.
눈 뜨면... 이름이 안 나와요. 눈 감으면 '채원아'라고 부를 수 있는데, 눈 뜨면 '아내'라고밖에...
그는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아내'라는 단어를 가리고 있었다. 5년차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 '와이프'라는 관계의 이름이 더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왜 우리는 어둠 속에서만 참된가
눈을 가리는 건 단순한 변태 행위가 아니다. 그건 관계의 방음벽이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를 더 이상 못 믿는다.
심리학자 존 고틀만의 연구에 따르면, 부부는 결혼 5년 차에 이르러 상대방의 표정을 0.1초 만에 해독한다. 그건 자동화다. 자동화된 해석, 자동화된 실망, 자동화된 방어.
어둠은 그 자동화를 끈다. 눈을 가리면 상대방은 더 이상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다시 긴장할 수 있다. 다시 떨릴 수 있다. 다시 상상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결혼 5년차 부부가 눈을 가려야만 처음 만난 날의 두근거림을 얻는다는 게.
눈을 떠도 네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당신도 아마 지금쯤 눈을 감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눈을 감은 채로 이 글을 읽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자.
당신은 누구의 눈을 가리고 있는가. 상대방의 눈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의 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