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래.”
새벽 두 시, 젖은 머리 냄새가 아직 채 건조하지 않은 통화. 그녀의 숨소리가 예전보다 한 박자 빠르고, 끝맺음이 날카로워졌다.
이상해. 당신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침대 끝에 앉았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먼저 웃던 입가, 잠든 사이에도 손을 놓지 않던 손길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 모든 게 한 문장으로 흔들리는 기분.
흔들리는 숨소리
“샤워 끝났어?”
“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타일 위를 걷는 발끝 소리, 아니 누군가의 발끝 소리가 작은 메아리처럼 튀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숨겨두던 말이 칼날이 되어 복부를 찌른다. 그녀의 속삭임은 이제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신호. 너와 나 사이에 끼인 제3의 입김.
연서의 목걸이
지수는 한 달 전만 해도 현우에게 말했다.
“재민 선배는 그냥 동아리 선배야.”
밤새 통화하고, 단둘이 맥주를 마셨다. 토요일 새벽, 현우는 지수의 카톡 알림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잠든 사이에도 어두운 화면에 들어온 메시지는 짧았다.
재민: 오늘도 너무 예뻐서 말이 안 나와. 집에 데려다줄걸.
지수의 대답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현우에게 담담히 말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래.”
처음엔 거짓말이 힘들었겠지. 이제는 익숙해졌을 거야.
독이 든 사탕
도윤은 아내 서영의 말투가 변한 걸 귀 끝에서 먼저 느꼈다. 평소 말 끝을 약간 올려 끊던 그녀가, 요즘은 한 음절씩 내려앉히며 쉬었다. 누군가와 몰래 대화하다 생긴 습관.
밤마다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1분, 3분, 10분. 나와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거울 속 본인에게 서영이 물었다.
“네가 먼저 아니었어? 내가 너를 먼저 지쳤잖아.”
대답 대신, 그녀는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의 숨결을 떠올렸다.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이제는 끝내 맛보지 못할 독이 든 사탕.
금기의 냄새
이거 하면 안 되는데. 문장 하나에 혈관이 터질 듯이 뛴다.
그녀의 속삭임이 달라진 순간, 우린 이미 알았다. 믿고 싶은 현실과 마주친 진실 사이에서 자아는 분열된다. 키스의 순간보다, 옷을 벗는 순간보다, 먼저 변한 말투 하나가 더 아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리듬을 머금었기 때문이다.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고백
오늘 밤,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면.
그리고 너는 아직도 그녀가 돌아올 거라 믿는가. 아니면 이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가.
배신은 끝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첫 음절이 달라진 그 순간, 이미 너와 나 사이에 검은 잉크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