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 준우를 처음 끌어안았을 때, 방 안에 있던 건 셋이 아니었다. 넷이었다. 유리, 준우, 그리고 남편이 복도 끝에 내민 시선—그 유령 같은 네 번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도 여기서 잘래?”
아홉 살 준우가 침대 끝에 턱을 괴고 물었다. 유리는 대답 대신 이불을 살짝 들어 올렸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끊기는 순간, 유리는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이제 네 방이 아니야.”
민재는 민우의 손등을 꼭 잡고 있었다. 좁은 오피스텔 침대 위, 아이의 새하얀 손등 위로 올려진 민재의 손가락은 마치 서류에 날인하듯 정확히 포개어졌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들어왔다.
“엄마는 오늘도 늦어.”
남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민재는 그 속에 담긴 시계태엽 같은 긴장감을 읽었다. 남편이 다가와 민우의 이마를 확인하더니, 이내 민재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었다. 잠깐 스친 피부의 온도가 질문이었다.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민재는 눈을 들어 남편을 마주쳤다.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민우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은 금방 잠에 취한 아이의 몸을 가볍게 떨렸다.
유리는 새벽 두 시, 남편이 거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의 등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긴장이 유리의 발끝까지 닿았다. 유리는 문득 아이의 숨결이 뺨을 간질리는 것을 느끼며, 살짝 몸을 돌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 유리는 아이의 머리를 더 깊이 눌렀다.
그러나 아이의 머리는 유리가 누르는 힘보다 더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유리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목덜미에서 느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유리의 가슴을 스칠 때마다, 남편의 자리는 한 뼘씩 뒤로 밀려났다.
민재는 민우가 깊은 잠에 빠진 뒤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의 새하얀 손등에 잡히는 자신의 손가락 골이 뚜렷했다. 어두운 거실로 나가니, 남편이 소파에 앉아 와인을 따르고 있었다. 코르크 마개가 빠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뚫고 나갔다.
“당신 아들이랑 너무 가까워진 거 아니야?”
잔 속 붉은 액체가 가늘게 흔들렸다. 민재는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대답했다.
“아이는 맡은 대로 잘 재우는 게 일이죠.”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민재의 몸을 끝까지 훑었다. 승리의 뒷맛이 썼다. 민재는 그것을 삼켰다. 그 뒷맛이 목끝까지 내려가자, 민재는 아이의 체온이 남아 있는 손등을 다시 꼭 잡았다.
준우는 다음 날 아침, 유리에게 작은 그림을 건넸다. 푸른색으로 칠한 집, 빨간 지붕, 그리고 그 옆에 긴 머리의 여자. 유리는 그림을 받아 들고는, 준우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아이의 머리는 한밤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남편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유리와 준우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마침내 뒤돌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리의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유리는 아이의 머리를 더 깊이 눌렀다. 그러나 아이의 머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민재는 민우가 유치원에 간 뒤,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어젯밥 아이의 체온이 남아 있는 곳, 민재는 손바닥을 대고 잠시 눌렀다. 그 자리는 아직 따뜻했다.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민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 걸음 다가섰다. 민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이 필요 없어지면, 나도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죠.”
남편의 속삭임이 민재의 귓전을 스쳤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시트 위에 아이의 체온을 더 오래 간직하려는 듯 눌렀다.
준우는 자라고 있었다. 유리는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라갈 때마다, 자신이 차지했던 빈 자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준우가 유리의 침대 대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유리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이가 문을 닫는 순간, 유리는 침대 끝에 앉아 숨을 헐떡였다.
아이를 잡았던 자리는 텅 빈 욕망의 구멍이었다. 그 구멍은 유리가 차지하려 한 남편의 자리보다 더 깊고 어두웠다.
민재는 계약이 끝나는 날, 민우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아이는 민재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민재는 그 뜨거운 눈물을 자신의 목덜미에 묻었다. 남편은 현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민재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도 놓치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민재는 복도의 벽에 등을 기댔다.
아이를 잡는 순간, 우리는 이미 끝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유리는 준우가 자라 독립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이의 방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은 닫혀 있었다. 유리는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 남편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유리는 그 빈 자리를 아이로 채우려 했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 자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이를 통해 남편을 밀어내려던 순간,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내 자리였다.
민재는 계약이 끝난 뒤에도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의 체온이 남아 있는 침대 시트를 매일 정리했다. 남편은 다시는 그곳에 오지 않았다. 민재는 아이의 체온이 사라지는 속도를 계산하며, 자신이 차지했던 자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잡는 순간, 우리는 이미 끝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