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가 결혼이라는 단어에 움찔한 순간, 나는 이미 전리품을 노리고 있었다

결혼을 말하자 눈살을 찌푸린 연인. 그 반응에 쓸쓸함을 느낀 나에게 던지는 어두운 질문: 내가 원하는 건 영원의 약속인가, 아니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소유욕인가.

결혼소유욕자유이별욕망

“결혼은 어때.” 술잔을 내려놓으며 슬쩍 던진 말이었다. 유리 바닥에 남은 맥주 거품이 사그러드는 사이, 혜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그녀의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들린 새우칩 한 조각이 부스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녀가 싫어하는 간장 냄새를 품은 채, 갑자기 초점이 흐려지는 시야를 마주쳤다. 그 눈빛은 분명했다. 결혼은 구시대 유물, 자유를 가두는 철창, 불안한 남자들의 집착일 뿐.


잡히지 않는 숨결, 그래서 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던

정확히 3년 전, 서울 성수동의 한 와인바. 나는 처음으로 혜원을 만났다. 투명한 피부에 홀로 와인 한 잔을 기울이던 그녀는, 문득 내민 라이터 불빛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여자들과 달랐다.

연애 6개월 차, 어느 날 새벽 그녀의 집. 나는 침대 맡에 앉아 혜원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눈썹 사이를 지나가는 걸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순간을 평생 가둬두고 싶다.

그때부터였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무르익기 시작한 건.

하지만 혜원은 달랐다. 연애 1년, 2년이 지나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 이대로 안 좋아? 서로 간섭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끝내지 못한 문장 뒤에 숨겨진 건, 혹시 내가 혜원의 평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내가 혜원의 평생이 되어버릴까 봐.


소유의 본능, 영원의 허망함 사이에서

나는 정말 영원을 원했던 걸까. 아니면 혜원이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도록 묶어두고 싶었던 걸까.

결혼은 본래 소유의 제도였다. 옛날 로마의 철창 같은 서약이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독점’하는 방식. 현대에 와서도 그건 다르지 않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견고한 울타리다.

하지만 이혼이 가능하다고? 그래도 ‘결혼은 영원’이라는 환상은 여전히 퇴색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가장 깊숙이 파고든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결혼은 그 두려움을 억누르는 마지막 방패였다. 서류 한 장, 반지 하나, 손님 200명 앞에서 말하는 ‘평생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주문. 그게 없으면, 우리는 허무하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가 싫어한 건 나의 불안이었다

혜원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 말은 정곡을 찔렀다.

나는 사실 혜원을 ‘사랑’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녀의 웃음, 냄새, 가끔 보여주는 무력함까지 전부를 사랑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내 곁에만 있길 바랐다. 그녀가 행복한지, 나를 사랑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 곁에만 있으면 됐다.

결국 우린 헤어졌다. 혜원은 유럽으로 떠났고, 나는 그녀가 떠나는 공항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끝내 말했다.

“이제는 널 지울게. 너도 날 지워.”

하지만 나는 지우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의 부재가 더 깊게, 더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내가 원했던 건 영원이 아니었다. 영원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더 치명적인 욕망.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끔찍한 소유욕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오늘 밤, 나는 다시 혼자 술을 마신다. 같은 와인바, 같은 좌석. 하지만 그녀는 없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이미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고 있다.

내가 결혼을 말할 때, 과연 무엇을 원했던가. 상대를 지키려는 사랑인가. 아니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집착과 두려움의 결정체인가. 답은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나는 영원과 소유욕을 구분할 수 없는 채로 살아간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서약이 되고, 누군가에겐 철창이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내 휴대폰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혜원(유럽)’. 아직도 지우지 못한 채 남겨둔 연락처다. 번호를 누를까 말까, 손가락이 떨린다. 그때 화면이 꺼졌다. 내가 비친 검은 화면 속, 한 남자가 눈을 마주친다. 그 눈빛이 말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도 난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저 떠나지 않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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