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네 집으로 오면 안 돼?"
나는 그녀의 눈빛이 떨리는 걸 봤다. 지하철 2호선 끝자락의 숨 막히는 술집, 우리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서로를 핥던 밤. 그녀가 잠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 떨림이 아니라 결심이 서려 있었다.
문 열어놔. 그리고 네 방에 있던 그 이불, 그거 그대로 두고 있어. 내가… 아직 길게 얘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랑 갈 테니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불륜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을 통째로 뒤집어쓰는 식욕이었다.
삼킨 열쇠
그녀의 이름은 서연이었다. 하얀 얼굴에 시커먼 눈초리. 현관문 손잡이를 처음 잡던 날, 그녀는 나에게 열쇠를 한 개 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열쇠가 아니라 그 집의 열쇠였다.
내 남편이 오후 다섯 시쯤 되면 해외 출장 간대… 하지만 우린 여섯 시에 오기로 했잖아.
초록색 양복 입은 남자, 그리고 꼬마 아이 하나.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를 우리는 떡하니 남의 침대 위에서 들었다. 남편의 뒷모습이 문 앞에서 사라지자, 서연은 내 손등을 쥐었다.
남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거실에 떨어진 아기 양말
그녀가 정말로 데려온 건 두 달 뒤였다. 토요일 오전 11시,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서연은 맨발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옆에는 검은색 안경 쓴 남자—그녀의 남편 지훈—과 세 살짜리 꼬마 아이. 아이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엄마가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했어!
순간 심장이 옴짝달싹했다. 서연은 싱긋 웃으며 들어왔다. 지훈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아이—아이 이름은 하준—은 벗은 양맓를 거실 한복판에 던지고 놀았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움직였다. 서연이 부엌으로 가서 물을 따르고, 지훈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하고, 하준이는 내 발을 안고 장난감을 달라고 조르고.
그리고 나는.
*내가 초대했다고? 내가 과연 이 사람들을… 내가?
왜 우리는 이 갈증을 품나
그날 밤 나는 화장실 거울을 봤다. 그 안에는 나와, 서연이, 지훈이, 하준이 함께 찍힌 모습이 비쳤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서연이 만든 김치찌개를 먹으며, 지훈이 나에게 회사 얘기를 하고, 하준이는 내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불륜의 연장이 아니라, 가장 금기된 장소까지 침투하려는 욕망이었다. 서연은 나에게서 뭔가를 빼앗으려 했던 게 아니라, 나의 공간에 그녀의 삶 전체를 밀어넣으려 했다. 그녀는 나를 ‘그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나의 세계를 그녀의 세계로 바꾸려 들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파멸적 침투 욕망’이라 부른다. 스스로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타인의 삶을 완전히 소비하고 싶어 하는 갈증.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와 파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허기다.
시간이 흐른 뒤
몇 달 후, 나는 서연의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어느 밤, 현관문 앞에 붙은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너무 무서워. 나는 그냥… 우리가 한집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게 잘못이었나?
지금도 가끔, 거실에 떨어진 아기 양맓를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든다. 과연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남겨놓은 빈틈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당신이라면, 그녀의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오라는 말을, 끝까지 거절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