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은 나도 저들도 잊지 못한다
밤새 축구 중계를 보다가 손이 닿은 순간, 예린은 TV 리모컨이 아니라 준혁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그도 그럴 줄 알았는지 웃으며 “또 잘못 잡고 있네” 하고 대답했다. 지난 4년, 이미 수십 번 몸을 섞었던 남자의 반응이라 믿었다. 그런데 옆에서 맥주를 따던 태민이 “형, 그만 좀 먹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예린은 화들짝 놀라 손을 떼었지만, 떨어지기 직전 태민의 손가락이 준혁의 무릎 위에 살짝 얹혔다. 세 사람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
본능이 흔들리는 순간
‘둘 다 원하는 게 아니라, 둘 다 내게서 빼앗기 싫은 거구나.’
예린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혀로 굴렸다. 과거 FWB 준혁, 그리고 그의 절친 태민. 한 명은 피부로, 다른 한 명은 눈으로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것도 예린이라는 매개 위에서. 서로에게는 끝도 없이 관대하면서도, 예린이 누구에게 기울면 기울수록 다른 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결국 둘 다 아닌, 둘 다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흥분을 돋우는 가장 어두운 연료였다.
사례 1: 주현과 형의 눈치
주현은 28살, 한낮에도 술을 마시는 광고 회사 AE였다. FWB였던 민서는 대학 선배였고, 민서의 절친 ‘형’이라 불리는 준호는 같은 팀 팀장이었다. 3년째 이어지던 관계는 지난 추석 연휴에 처음 흔들렸다. 민서의 집 대신 준호의 고향집에서 닷새를 보냈을 때, 주현은 몰래 두 사람을 관찰했다. 민서가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면 준호는 주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도 민서 좋아하냐” 물었다. 주현은 입을 다물었지만, 민서가 나올 때마다 준호는 눈짓으로 ‘우리만의 비밀’을 재촉했다.
연휴 마지막 밤, 다 같이 한 방에 누웠다. 민서는 곯아떨어졌고, 준호는 몰래 주현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때 민서가 뒤척이며 “둘 다 안아줘” 하고 중얼거렸다. 둘은 동시에 몸을 움찔했지만, 결국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날 이후, 주현은 민서와 잘 때마다 준호의 이름이 떠올랐다. 민서의 몸 위에서 준호의 호흡이 느껴지는 환각. 그 환각은 주현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사례 2: 세진의 침묵한 촉각
세진은 31살, 임상심리 상담사였다. FWB 태원과 2년째였고, 태원의 동창 혜진은 정신과 레지던트였다. 술자리에서만 만나던 관계는 어느 토요일 새벽, 혜진의 콜센터 근처 원룸에서 급변했다. 태원은 술에 취해 먼저 잠이 들었고, 혜진은 세진 옆에 조용히 앉아 “너도 태원이랑 같이 있으면 나 생각 안 나?” 하고 물었다.
세진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혜진은 계속했다. “우리가 아는 태원이 아닌 것 같잖아. 너랑 나랑만 아는 태원이라고.”
혜진은 조심스럽게 세진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세진은 문득 태원이 그 손을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똑같은 위치, 똑같은 각도. 그 찰나, 세진은 태원이 이 장면을 꿈에서 목격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혜진은 세진의 손을 자기 볼에 대고 “태원이 없는 우리만의 시간, 만들어 보지 않을래?” 하고 속삭였다. 세진은 “안 돼” 라고 대답했지만, 손은 혜진의 뺨을 더 세게 눌렀다. 잠든 태원의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지금 우리가 서로를 만지는 걸 꿈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금기의 단맛
인간은 누구나 ‘친구의 것’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려 애쓴다. 그러나 그 억눌림이 한 번 터지면, 그 터짐은 자기도 모르게 은밀한 공모로 변한다. ‘우리만 아는 비밀’이라는 환상은 욕망을 배가시킨다. 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조금이라도 기울면, 남은 두 명은 서로를 감시하면서도 서로를 원한다. 친구의 연인, 연인의 친구, 그리고 나. 삼각형은 언제나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이 서로를 더 세게 묶어 버린다.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
만약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과거 FWB와 그의 친구가 스쳤다면,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 보라. 그들이 동시에 당신을 바라볼 때, 당신은 과연 누구의 이름을 더 먼저 떠올릴 것인가. 아니, 혹시 세 번째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