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전부야" 그 말이 사라진 순간
"너는 내 전부야." 그가 내 귀에 속삭이던 장면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강렬한 섹스 끝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건넨 말. 나는 그 말을 한 입에 삼켰다. 그리고 그가 곤히 잠든 새벽 3시 14분, 화장실 등불 아래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이건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거야.
잠금 해제는 생각보다 쉬웠다.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쓴다고 했을 때 속으로 웃었던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될 줄이야. 화면이 밝아지자마자 떠오른 알림 한 줄.
‘오늘 자정, 414호에서 보자. 네가 쓴 립스틱 색이 너무 궁금해. -지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떨렸다. 414호. 우리가 처음으로 키스했던 그 호텔 방호수.
잠긴 문이 열릴 때 느껴지는 단맛
휴대폰을 엿보는 순간엔 항상 어떤 전율이 있다. 마치 남의 집 창고를 몰래 열어보는 듯한 죄책감과, 아마도 나를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뒤섞여.
내가 진짜 확인하고 싶은 건 뭘까?
사실은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진실은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진실이 내 손끝에서 피어나는 순간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마치 믿고 싶지 않은 영화 엔딩을 다시 돌려보는 사람처럼.
카카오톡을 열었을 때, 나는 이미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으니까.
"오빠, 나 오늘 너무 힘들어" 그 문자가 시작이었다
‘지현’과의 대화방. 스크롤을 올릴수록 손가락이 얼어 붙었다.
오빠, 나 오늘 너무 힘들어. 그래도 니가 있어서 버티는 거 알지?
그래, 나도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네가 있어서 나도 버티지.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만났을 때, 그가 지하철에서 내 손을 틀어쥐던 그날 밤 이후로.
그러나 그날 밤, 그는 분명 지현과 함께였다. 23:47, 지한텔레콧집 사진 한 장. ‘이거 먹고 싶다’며 보낸 사진. 그 자장면은 내가 그날 피곤하다며 거절했던 그 집이었다.
나를 속이는 법, 그가 배운 날들
나는 그날 밤 2시간 동안 그의 휴대폰을 뒤졌다. 아니, 탐색했다고 해야 맞을지도. 갤러리 속 사진들. 지현과의 셀카들이 5월 17일부터 시작이었다. 우리가 임대차 계약 갱신 때문에 싸운 그날.
그날 밤, 그는 지한에게 갔겠구나.
더 깊숙이 파고들수록,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갔다. 휴대폰 속 그는 나에게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지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표정. 그 표정이 내가 먼저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가 나에 대한 대화를 지한과 나눴던 방식이었다.
'우리 사랑이 점점 지겨워지는 것 같아.'
'그래도 나는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야 해. 너 아니면 나도 없을 것 같아서.'
사랑이 지겨워? 그 말을 내가 항상 해온 사람은 누구였지.
왜 우리는 열어보고 싶어 하는가
심리학자들은 이걸 '디지털 고지식'이라고 부른다. 연구에 따르면, 연인의 휴대폰을 엿보고 싶어하는 욕망은 실제로는 자신의 불안감과 질투를 확인시켜주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것이 있다. 우리는 휴대폰 속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상상해온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진실보다,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열어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이미 배신한 연인의 눈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질문
그날 밤 나는 휴대폰을 끄고 다시 그의 옆에 누웠다. 그는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그의 휴대폰을 열었던 이유는, 정말로 그를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이미 그를 배신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내 휴대폰도, 그의 휴대폰도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모두가 가진 가장 큰 거짓말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바로, 우리가 아직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