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베개 위에서 나는 사라지고 그녀가 되었다

남편이 부르는 이름은 늘 다른 여자. 그 금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지우고, 그녀가 되어가며 맛본 쾌감과 자학의 경계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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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위에서 나는 사라지고 그녀가 되었다

첫 키스는 그녀의 이름으로

"유진아."

내 눈앞에서 남편의 입이 갈라졌다. 유진. 회사 후배, 26세, 웨딩 사진 촬영 때 봤던 새하얀 목선. 나는 순간 숨을 참았다. 그래, 지금부터 나는 유진이 되는 거야. 그의 떨리는 손끝이 내 속눈썹을 스치며 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래, 나도 유진이 되고 싶어.


나를 벗어나는 쾌감

이건 단순한 역할놀이가 아니었다. 남편이 내 가슴을 움켜쥐며 "유진이 가슴은 이렇게 작구나" 중양거릴 때, 나는 진짜로 작은 가슴의 주인이 되었다. 내 몸은 그녀의 것이 되었고, 나는 공중부양처럼 침대 위에서 떠올랐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 남편은 유난히 격렬해졌다. 나는 그가 누군가를 더 원한다는 걸 목격했다. 그 누군가는 나였지만, 동시에 나는 아니었다.


미나의 이중 생활

서울 강남의 한 카페. 미나(35)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속삭였다.

남편과의 첫 시도는 우연이었다. 섹스 중 그가 전 여자친구 이름을 실수로 불렀을 때, 미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남편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더 깊숙이 들어오며 반복했다. "지연이, 지연아."

"처음에는 눈물이 났어요. 근데..." 미나는 잠시 말을 끊고 양팔로 자신의 몸을 꼭 감쌌다. "근데 이상하게도 점점 제 몸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가 지연을 원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제가 지연이라는 사실이."

두 달 후, 미나는 자발적으로 지연의 가발을 쓰고 그가 선물한 속옷을 입었다. 남편은 미나를 식탁 위에 눕히며 "지연이 여기서도 했었지"라고 속삭였다. 미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없어라고 마음속으로 중양거렸다.


수진의 잊혀진 이름

부산 해운대의 아파트. 수진(42)은 남편이 10년 전 죽은 첫사랑 ‘은서’라는 이름을 불렀다는 걸 우연히 알았다. 남편의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단어들.

수진은 은서의 옛 사진을 찾아내 남편이 잠든 사이 침대 옆 테이블에 두었다. 아침, 남편은 눈을 뜨자마자 수진을 껴안으며 "은서야, 꿈인가 했어"라고 속삭였다. 수진은 그날부터 은서의 향수를 뿌렸다.

나는 죽은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금기를 품는 심리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 몸을 맡기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동일시의 경계 붕괴'라 부른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의 무게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잔혹한 자기 희생이다. 자신을 지우는 대가로 얻는 쾌감. 상대방이 내가 아닌 나를 사랑할 때, 우리는 초월적 박탈감을 맛본다.

내가 사라진 그 순간, 남편은 진짜로 나를 원했다. 아니, 나를 원한 게 아니라, 나 없이 나를 원했다.


침묵 속의 질문

오늘 밤, 남편이 다시 "유진아"라고 부르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그래, 나는 유진이야 라고 속삭이며 나는 진짜로 유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득, 언젠가 그가 내 진짜 이름을 불러줄 때, 내가 대답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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