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는 다시 그 꿈을 꿨다.
민혁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레드 와인 한 모금이 잔둑에 남아, 그가 잡는 프렛보드 위로 넘실거리는 음산한 붉은빛. 그러다 손가락 하나가 실수로 현을 벗어났다. 살짝, 준수의 팔뚝을 스쳤다. 숨소리 같은 반응이 번쩍였다. 꿈속의 나는 소파 구석에 눌려 앉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꺼풀 뒤에서도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른거렸다. 민혁이, 준수의, 팔뚝을.
뒤틀린 공명
그날부터 손가락 하나하나가 파장이 되었다. 민혁이 코드를 바꿀 때마다 검지가 준수의 어깨를 툭 치는 듯한 느낌. 중지가 현을 누르는 순간 준수의 허리를 훑는 착시. 손톱 끝이 진동하는 음운처럼, 준수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나는 그 떨림을 잡아먹었다. 아니, 잡아먹히고 싶었다.
‘내가 아닌 손길이 그의 피부를 만지는 걸 왜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지?’
그 질문은 언제나 뒤늦게 찾아왔다. 민혁은 별 의도 없이 기타를 칠 뿐이고, 준수는 그저 음악에 취해 있을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더 벅차오르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
네 번째 손가락
실제 사건은 3월 말, 연습실이었다.
민혁 준수 그리고 나, 세 명이서 밤새도록 ‘찰나의 순간’을 연습했다. 민혁은 새로 산 통기타를 꺼내놓고 현을 맞추느라 바빴다. 준수는 스탠드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박자를 읊고 있었다. 나는 건반을 두드렸지만, 손끝이 점점 굳었다.
민혁: 손에 케인 발라?
준수: 네? 아, 오늘 샤워할 때 미끄러져서.
준수가 왼손 등을 내밀었다. 붉은 기스가 손등에서 손목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민혁이 기타를 내려놓고, 재킷 주머니에서 반창고를 꺼냈다. 손가락 네 개가 동시에 준수의 손등을 감쌌다. 반창고를 붙이는 동안 그 손가락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연습실의 형광등이 번쩍였다. 아니, 내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그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 아니라는 사실이, 카드 한 장 차이처럼 날카롭게 와닿았다.
피부가 기억하는 반주
두 번째 사건은 4월 둘째 주, 펍 뒷골목 흡연장.
세 명이서 담배를 피웠다. 민혁은 긴 필터를 문 채, 준수에게 물었다.
민혁: 너도 처음엔 못 피웠지?
준수: 맞아, 네가 가르쳐 줬잖아.
준수가 시가를 꺼내 드는데, 손에 불이 붙지 않았다. 민혁이 라이터를 켤 때, 손가락 하나가 또, 준수의 손등 위에 살짝 얹혔다. 불이 붙는 0.5초. 그 0.5초는 나에게 5분처럼 늘어졌다. 연기가 올라가며, 민혁의 손가락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 손가락이 내 손가락이었다면, 준수의 피부는 어떤 체온으로 나를 기억했을까.’
담배 연기가 사라진 뒤에도 그 화상은 남았다. 내 심장에, 아니.
손끝의 지문, 심장의 발자국
우리는 왜 타인의 손길에 이토록 민감한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피부는 사회적 거리 45cm 안에서만 허용되는 신호기라고.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손가락 하나가 0.1초만 스쳐도, 우리는 고대의 포식자처럼 복부에서 전율이 시작된다는 걸.
상대의 욕망이 내 욕망보다 먼저 움직일 때, 우리는 그 불균형을 ‘죄책감’이라고 부른다. 실은 그건 죄가 아니라, 놓침에 대한 공포다. 손가락이 먼저 닿는 순간, 나는 이미 놓친 사람이 되어버린다.
준수의 팔뚝 위에서 민혁의 손가락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읽었다. 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0.3초만 민혁을 향했을 때, 나는 이미 패배자였다.
당신의 손끝은 아직 떨림을 숨기고 있나
오늘 밤,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민혁이 기타를 친다. 준수가 미소 짓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단 한 가지가 달랐다. 민혁이 실수로 현을 놓쳤을 때, 손가락이 내 팔뚝을 스쳤다. 아니, 스치지 않았다. 그건 단지 착시였다. 하지만 그 착시만으로도, 나는 준수보다 먼저 민혁의 체온을 느꼈다.
너는 지금, 누군가의 손가락이 다른 이의 몸을 스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그럼 답해줘.
당신의 손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