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31층, 초록 넥타이를 조이며
“너 눈이 왜 그래?”
유정이 나지막이 물었다. 31층 레스토랑. 그가 초록 넥타이를 끌어올리는 순간, 시선이 스쳤다. 1초, 아니 0.5초. 그 짧은 스쳐 지나감에 전부 담겼다. 토마토 소스가 입가에 붉게 묻은 피자, 닦아주지 않는 손, 이젠 봐도 아무 느낌이 없구나.
“오빠, 우리가 뭘 기념한다고?”
숟가락 끝이 유리창에 부딪혀 울렸다. 아래로 펼쳐진 서울 불빛 속에, 검은 정장의 유혁이 서 있었다. 와인 한 잔을 든 채,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같은 유전자, 다른 온도.
집에 돌아와, 물소리 30분
샤워를 하는 동안 유정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전엔 휴지조차 떨어뜨릴 때마다 수다를 떨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눈은 이미 얼음장. 왜 하필 유혁이었을까.
“오늘 저기서 형이…”
“아, 유혁이? 근데 왜 말 안 했어?”
말이 없다. 3년 전 첫 데이트 때도 그랬다. 형과 동생, 똑같은 미소 속도를 달리고 있었다.
5월 17일, 유정 출장
밤 11시 12분, 문을 두드리는 소리. 유혁이 서 있다. 검은 티셔츠, 청바지, 동일한 향수를 뿌렸지만 농도가 다르다. 손엔 분홍 도시락 가방.
“유정이 도시락 두고 갔길래.”
고양이가 발가락을 핥는 사이, 그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다. 유정과는 각도가 다르다.
“민지 씨는 요즘 유정이랑 어때?”
숨이 멈춘다. 유혁의 눈이 반짝인다. 아직 살아 있다.
“별로예요.”
한 걸음, 두 걸음. 유혁이 다가온다. 심장이 뛴다. 금기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발코니, 2시 47분
"담배 피워도 돼?"
문을 열고 나가는 유혁. 나도 따라 나선다. 서울의 밤이 온통 잉크빛. 라이터가 켜지는 순간, 작은 불꽃이 그의 눈동자를 흔든다.
"눈이 아프지 않아요? 계속 유정이 눈치를 보면서."
담배 연기 사이로 그의 시선이 번쩍인다. 손끝이 내 머리카락을 넘긴다. 유정과는 3년 만에 느껴보지 못한 온도.
문이 닫히는 3cm
"추워요. 들어가요."
유혁이 문을 닫으며 나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문이 닫히는 순간, 3cm. 코끝이 닿을 거리. 숨결이 이마에 닿는다. 등이 벽에 박힌다.
벽에 박힌 3cm
손끝이 뺨을 감싼다. 뜨겁다. 유정의 눈에서는 3년 만에 느껴보지 못한 온도. 유혁의 눈이 나를 비춘다. 아직 식지 않은 눈빛, 그 안에 내가 선명히 떠오른다.
이건 배신이다.
하지만 눈빛이 살아 있다.
숨결이 섞인다. 유혁의 손이 뺨을 스친다. 뜨거움. 유정의 눈빛이 식은 이유를, 유혁의 눈빛이 말해준다. 3cm 안쪽, 금기의 내부가 열린다.
눈빛이 식는 순간, 우리는 더 뜨거운 것을 원한다. 그 뜨거움이 배신인지 본능인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