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떨림, 그리고 체온의 차이
"야, 너 이상해. 내가 뭘 잘못했어?"
카페 모서리 테이블, 오후 3시 27분. 지수가 불쑥 던진 말에 나는 잔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앉은 나영을 노려봤다. 나영은 내가 아닌 — 내 얼굴을 닮았다는 이유로 내가 데려온 — 친구다.
나영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지수의 시선이 가늘게 빛났다. 한쪽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배웠다. 지수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서 똑같은 떨림을 흘렸다.
숨겨진 사나이의 시선
그날 이후 나는 지수의 눈이 나를, 그리고 나영을, 그리고 다시 나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록했다. 마치 얼굴이 두 개인 동전을 앞뒤로 뒤집듯.
나와 나영이 함께 있을 때 지수는:
- 나에게는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는 자세
- 나영에게는 손등을 내밀며 시계를 확인하는 자세
차이는 미세했지만 확실했다. 나를 볼 때는 눈이 부드럽게 감겼다가 떴다. 나영을 볼 때는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눈동자가 단단해졌다. 마치 ‘이건 금지된 맛이다’ 라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나영, 혹은 나의 그림자
나영은 내 왼쪽 뺨에 홍조가 드는 각도, 심지어 말 끝에 살짝 올라가는 목소리까지 닮았다. 단지 머리는 짧았고, 웃음소리만큼은 한 옥타브 높았다.
그날 밤 나는 나영과 지수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동아리방, 형광등 하나 켜진 11시 42분. 나영이 내 옆에 앉자 지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 순간의 정적. 그리고 지수가 던진 첫마디.
"너 혹시... 유리 씨랑 사촌이야?"
그때만 해도 모두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어야 했다. 하지만 지수가 나영을 보며 사라진 표정 하나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건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하는, 혹은 ‘이건 나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아슬아슬한 중간 지점.
그의 눈이 녹는 각도
둘만의 밤이 되자 지수는 몸을 기울였다. 나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속삭였다.
"왜 그녀랑 있을 때마다 네가 더 눈에 띄는지 모르겠어."
순간 나는 그의 말 속에 숨겨진 거울을 보았다. 그는 나영을 통해 나를, 그리고 나를 통해 나영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었다. 두 개의 얼굴을 겹쳐서, 혹은 찢어서, 욕망의 화학식을 완성하려는 듯했다.
나는 그날 밤 지수의 눈을 마주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닮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
왜 우리는 닮은 얼굴에 끌리는가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나르시시스트적 프로젝션’이라 부른다. 타자의 얼굴 속에 내 모습을 투사하며, 결국 나 자신과의 사랑을 반복하는 현상.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뿐이다. 더 깊은 것은 거울이 되는 두려움이다. 그녀가 나의 미래일 수도, 혹은 나의 과거일 수도 있다. 지수의 눈빛이 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 사람이 나와 닮았다’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나와 닮았지만 나는 아니다’라는 점에 있다.
그래서 그 시선은 뜨겁다. 금기를 향한 열기. 내가 아닌 나를, 혹은 내가 될 수도 있는 나를 탐닉하는 눈빛.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는다.
거울 앞에서 묻는다
오늘도 나와 나영은 같은 구깃구깃 셔츠를 입고 지수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우리는 닮았지’ 라고. 하지만 지수는 다르게 웃었다.
그가 나를 볼 때 나는 나 자신의, 그리고 나영의 얼굴을 동시에 들여다본다. 그가 나영을 볼 때 나는 나의 얼굴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그래서 묻는다. 만약 당신의 연인이 당신을 닮은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당신은 그 시선의 온도를 견딜 수 있을까. 그 뜨거움이 너를 향한 게 아니라, 너를 지워내는 열이라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