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선 그의 눈빛
밤 열두 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민우가 서 있었다. 한 달 전 나를 차고 떠난 남자. 지금 그의 손에는 우리가 다니던 분식집 포장 봉투 하나. 오징어 볶음과 쫄면. 내가 술 마시고 항상 시키던 메뉴.
이런 걸로 되겠지.
그가 먼저 입을 뗐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말은 절대로 믿지 않기로 했다. 지난번엔 그 말에 속았으니까.
잘려진 자리의 온도
나는 아직도 그가 떠난 자리의 온도를 기억한다. 침대 한쪽이 싸늘해지는 걸 새벽 네 시에 느꼈지. 문자 하나 없이. 전화 한 통 없이. 그냥 흔적도 없이.
왜 다시 돌아와? 네가 끊은 거잖아.
민우는 대답 대신 포장 봉투를 내민다. 손이 떨린다. 아직도 나를 보면 그래.
이제는 내가 아는 거야. 이 떨림이 공포라는 걸.
지연의 이야기
지연은 서른다섯, 광고회사 팀장. 세 달 전 남편이 바람났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 한 달은 미친 여자처럼 그를 붙잡았다. 눈물로, 애원으로.
근데 뭘 어쩌겠어. 그가 돌아온 건 지연이 먼저 떠났다고 생각했을 때였지. 갑자기 문자 오더라.
- 밥이라도 같이 먹자.
지연은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목요일 저녁, 그들이 처음 데이트하던 와인바에서.
남편은 예전처럼 와인을 따르고, 지연의 머리카락을 넘겨줬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대신 "그때 왜 그랬냐"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지연은 깨달았다.
아, 이제 내가 끊을 차례구나.
욕망의 해부
왜 우리는 끊은 관계에 다시 매달릴까? 그것도 끊긴 쪽이 아니라, 끊은 쪽으로 돌아올 때?
그건 권력의 문제야.
누군가를 버리는 쪽은 항상 강한 것처럼 보였다. 떠나는 발걸음이 자유로워 보였지.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를 되찾고 싶어 한다. 끊긴 사람에서 끊는 사람으로.
하지만 진짜 중독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거절당한 자의 슬픔에 중독돼 있었다. 그 슬픔이 사라지면, 우리는 누구인가?
세 번째 밤
민우는 계속 찾아왔다. 매일 밤. 오징어 볶음은 냉장고에 쌓여만 갔다.
문을 열 때마다 그의 눈이 점점 더 초점을 잃어갔다. "제발"이라는 말이 늘어날수록, 나는 더 차가워졌다.
- 내가 뭐가 그렇게 후회스러워?
그날도 민우는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문을 닫았다. 처음으로.
철컥.
소리가 울릴 때, 뭔가가 끊겼다. 아마 그가 느낀 기분.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정반대.
금기의 단맛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끊긴 관계에 다시 끌리는 건 일종의 역설적 욕망이라고.
금지된 것은 더 달콤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금지된 것에 끌리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금지하는 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 자리에서 느끼는 권력이란 게 있었다. 상처받은 사람에서 상처 주는 사람으로.
그렇게 되면, 진짜 아픈 건 누구일까?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전화기에 아직도 그 이름이 있다면.
만약 그가 지금 문 앞에 선다면?
당신은 문을 열까, 아니면 그가 당신이 떠났다고 생각하게 만들까?
그 답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