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부 님, 여기 사인만 남기면 됩니다."
인사팀 과장이 건네는 결혼신고서 옆에 놓인 작은 동그라미. 다이아몬드가 회의실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김소윤은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 반지가 지금 당장 자신의 손가락을 조를 것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반한 것은 반지가 아니라 구속이었다
박현수 대리는 결혼 발표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우리 조에선 처음이네요." 그 첫사랑 같은 미소 뒤에선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 정확히는 무엇이 없었을까.
그는 부장님께 얘기하던 중이에요. 예비신부 눈치를 봐야죠. 애가 생기면 어쩌려고...
수다스러운 말들이 소윤의 귀를 간질였다. 그녀는 며칠 전까지 박현수의 '밀당'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지각해서 들어오면 키를 낮춰 속삭이던 그. "오늘은 여기까지만, 너무 예뻐서 집중이 안 돼."
사내연애, 그 은밀한 전리품
연애 시작 6개월. 소윤은 프로젝트 팀장이 되었다. 동시에 둘의 관계는 "누구 몰래"에서 "회사 전체가 아는 비밀"로 바뀌었다.
회의실에서였다. 현수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우리, 진실게임 어때?" "뭐?" "술자리에서 말이야. 너랑 나 사귄다고."
그날 밤 회식자리에서, 소윤은 술 한 잔 마시지도 못했다. 현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잔을 대신 비웠다.
'내 여자'라는 표식. 이 반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 있는 듯한 이야기 - 첫 번째
28세 김지영, 광고회사 AE
결혼 3년차 지영은 아직도 반지를 빼고 다닐 수 없었다. 남편이 그녀의 클라이언트 미팅 스케줄을 다 받아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6시 끝나는 거 맞지?" "...응." "김 대리랑 저녁 먹는다더라. 회식 아니라면서?"
어떻게 알았을까. 지영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1캐럿짜리가 아니라, GPS처럼 느껴졌다. 남편의 '배려'였다. "야근 많이 하니까, 너나 걱정돼서."
그날 밤 김 대리는 갑자기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개인 사정이 생겼다"는 말 한마디로.
실제 있는 듯한 이야기 - 두 번째
31세 이성민, 제약회사 과장
성민은 결혼 2년 만에 이혼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자유로워서."
전남편은 그녀가 반지를 안 끼고 온 날, 직장까지 찾아왔다. 회사 로비에서 공개적으로 소리쳤다. "반지는 왜 안 끼고 다녀?" "...오늘 손이 좀 붓는 바람에." "다른 사람 만나는 거야?"
그날부터 성민은 매일 아침 손가락의 흔적을 확인했다. 반지 자국이 옅어지면 벌이었다.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더 쎄게 끼곤 했다. 피가 맺히도록.
왜 우리는 이 구속을 갈망하는가
심리학자 하비어 밀라는 말했다. 사랑은 소유욕과 합창하는 가장 아름다운 폭력이라고.
결혼반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그것은:
- "이 사람은 나의 것"이라는 사회적 계약서
- "다른 이의 욕망을 차단하는" 방패
- "그녀의 가능성을 내가 통제한다"는 선언문
회사라는 공간은 더 잔인하다. 연애 상대가 팀원이면, 그녀의 승진은 '우리'의 위협이 된다. 그녀의 야근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녀의 재능은 갑자기 '흔적'이 된다.
'도대체 나는 누구의 소유물인가?' 이 질문은 너무 늦게 온다. 이미 반지가 굳어진 후니까.
마지막 질문
당신의 반지를 한 번 떠올려보자. 그것이 당신의 약혼자를 누가 훔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오늘 밤, 당신의 반지를 내려놓고 잔다면 어떤 꿈을 꿀까. 자유로운 악수를 나누는 꿈. 아무도 모르는 미소를 짓는 꿈. 손가락에 흔적 하나 없이 떠나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