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소리지?”
아빠의 목소리가 침대 밑을 향했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으로 새어 나오던, 와아아… 하는 낮고 잦은 진동이 순식간에 멎었다. 아직도 실리콘 표면에 남은 미묘한 체온이 공기를 떨게 했고,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식탁 위에 올려진 검은 조각은 생명을 잃은 듯 고요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미세한 진동이 흘러나온 순간, 세 사람의 숨이 한꺼번에 꼬인 것을 우리 모두 알았다.
“…전원이 켜져 있었네.” 아빠가 중얼거렸다. 손가락 끝이 우연히 버튼을 스쳤을 뿐인데, 그 짧은 울림만으로도 벌써 충분했다. 엄마는 식탁 위의 물건을 외면한 채, 대신 내 뺨을 향해 시선을 꽂았다. 피부에 남은 그 시선은 결이 거친 붓질처럼 아프도록 또렷했다.
‘왜 네가 이런 걸…’ 하고 엄마가 말했다
사실 그건 내가 수백 번 되뇌었던 질문이었다. 스물일곱, 여전히 부모님 밑에서 살면서도 ‘성인’이라는 말이 내게는 낯설었다. 연애는 숨죽여야 했고, 직장 생활도, 침대 밑에 숨겨둔 작은 욕망도 모두 비밀이었다.
카드 결제 문자가 울렸던 날, 엄마에게 뱉은 거짓말이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이미 범죄자였다. 단지 내 방 문을 닫는 행위만으로도 ‘엄마, 아빠 몰래’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깊게 새겨졌다.
‘나는 왜 아직도 숨어야 하지? 난 어른인데.’
미소, 31세 — 화실이라 부르던 방
그녀는 미대 졸업 후에도 작업실 대신 부모님 집 2층을 택했다. ‘화실’이라 이름 붙인 방 한쪽 서랍 깊숙이 숨겨둔 건 작은 래빗 진동기. 붉은색 고무 귀가 쪽빛 봉투 안에 포장돼 있었다.
청소하던 엄마가 봉투를 발견했을 때, 미소는 학교 간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도서관에 숨어 있었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래빗을 향균 소독하고 새 비닐로 다시 싸놓았다. *‘내 욕망을 끓는 물로 데쳐 반납해주겠다’*는 암시가 더 무서웠다. 그날 이후 미소는 붓을 들지 못했다. 손끝은 부모님이 머문 흔적만 계속 더듬었다.
준호, 29세 — 원룸의 비밀
준호는 대기업 다니는 척하며 2년째 백수였다. 부모님 앞에선 원룸 자취를 근황으로 속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갑자기 집 방문을 했다.
침대 밑에서 발견한 건 프로스테이트 마사저. 아빠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화장실로 들고 가 세면대 위에 던져버렸다. “네가 왜 이런 변태 같은…” 목소리는 떨렸다. 준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빠는 뒤돌아서며 한 마디를 던졌다.
“네 엄마한테는 말 없을 거다. 니가 어른이긴 한데…”
그날 이후 준호는 원룸 계약을 해지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빠와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왜 우리는 부모 앞에서만큼은 욕망 없는 아이로 남고 싶은가
수치심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랑의 극단적 형태다. 부모가 보기를 원하지 않는 나의 일부를 스스로에게서 도려내고 싶은 충동. 이건 단순한 가부장제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배운 곳이 부모의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에 비친 나는 처음부터 ‘순수’해야 했고, 성적 욕망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엄마, 나도 똑같은 고통을 원해. 나도 네가 겪었던 그 수치심을.’
그래서 우리는 연기한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척, 모르는 아이인 척.’
현관문이 닫히고 나면
엄마 아빠는 잠든 듯하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침대 밑을 만진다. 차가운 공기만 흩날릴 뿐, 진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그 잔향이 여전히 방 한가득 맴돈다.
당신도 그랬을까. 부모님이 너의 욕망을 발견한 그날 이후, 너는 그 욕망을 어떻게 다시 꺼내들었나. 아니, 아예 꺼내지 못하게 버렸나.
‘당신은 아직도 그 래빗, 그 진동, 그 미묘한 울림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만질 수 있나?’
침대 아래는 다시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선 여전히 미세한 잔향이 남아 흔들리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단지 숨만 겹칠 뿐, 그 숨결마저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밖에서는 새벽 기차가 한 대 지나간다. 진동은 멎었지만, 그 흔적이 내 손끝을 간지럽힌다. 아직도 나는 문 앞에서 한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 한 걸음이 어쩌면 평생 걸릴지 모른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