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새벽 2시 17분. 클럽 뒷문에서 찍은 우리의 영상은 아직도 7초씩 재생된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건드리며 웃었고, 나는 그 손끝을 따라 초점이 흔들렸다. 내가 지금 너무 예쁘게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화면 위로 메시지가 떴다.
내일 봐
내일 점심 우리 동네로 올게
일어나면 연락해
그리고 8시간 뒤, 나는 눈을 떴다. 해는 점점 높아졌고, 스냅챗 알림은 오직 뉴스레터만 쏟아냈다. 그의 프로필을 터치했을 때 나는 아직도 몰랐다. 회색 비행기 아이콘. 차단을 확인하는 데는 0.3초, 그게 누군지 깨닫는 데는 0.1초. 합쳐서 단 0.4초의 허공이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밤
우리가 스토리에 올리는 것은 누가 봤는지도, 얼마나 봤는지도 숨기지 않는다. 좋아요 대신 촬영해주는 손이 더 직접적이다. 그 손이 사라지는 건 단순한 기술적 차단이 아니다. 그는 나를 지우되, 나를 봤던 시간마저 지워버린다. 스톱워치처럼 24시간이 다 되기 직전, 그는 추억의 유통기한을 먼저 정해버렸다.
24시간. 이건 딱 한 날의 밀도로 누군가를 소비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새로운 캔버스로 넘어가는 속도다. 잠들기 전까지는 서로의 어둠을 샅샅이 긁어냈지만, 해가 뜨면 더 이상 필요 없는 필터처럼 사라진다. 그가 보낸 사진 한 장에는 아직 내 숨결이 묻어 있을 텐데, 그는 차단이라는 살균 소독을 먼저 해버린다.
나는 왜 매번 남는 쪽이 되는가
그가 사라진 건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의 민낯을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하지만 스냅챗이 알려주는 작은 숫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내가 그의 스토리를 47번 봤다는 기록, 그는 단 3번. 숫자는 다정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셋이었다. 레몬 향 나던 준혁, 문신 하나가 전부였던 태우, 그리고 이번엔 이름도 모르는—잠깐, 스냅닉은 뭐였더라? ‘blue_something’. 그들은 모두 똑같이 말했다. 내일 봐. 꼭. 그리고 모두 똑같이 사라졌다. 나는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실수라고 부르기엔 너무 정교한 패턴이었다.
준혁, 혹은 파란 조명 속의 거짓말
준혁과 나는 지하 루프탑 바에서 만났다. 남산의 네온사인이 우리를 빨갛게 물들였고, 그는 손에 캔맥주를 들고 내게 걸어왔다. 첫 키스는 CCTV가 잡힐 것 같아 뒷골목으로 숨었다. 그날 밤 그는 스토리에 올렸다: 이마에 난 상처를 클로즈업한 사진— ‘오늘은 예술이야’ 라는 캡션과 함께.
다음 날 점심, 그는 정말 나타났다. 한강변 푸드트럭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핫도그를 하나씩 먹으며 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가 사진을 찍어 올리려고 카메라를 켜자, 그는 갑자기 “그만 찍자” 하고 말했다. 셔터 소리에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날 이후, 그는 사라졌다. 스토리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고, 메시지는 회색으로 남았다. 문제는 나도 그날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점이다. 증거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사라진 거였다.
디지털 고스트의 심리학
연구실에선 이 현상을 ‘플래시 메모리 소멸’ 이라 부른다고 한다. 단기 기억이 24시간 이내에 삭제되며, 뇌는 그 빈자리를 우리가 원했던 모습으로 채운다. 스냅챗은 이 생리를 그대로 복사한 플랫폼이다. 사진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는다. 기억은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차단한다. 내일 봐라는 말에, 우리는 하룻밤의 가능성을 완전체로 믿는다. 욕망이 24시간의 실루엣으로 굳어지기 전에, 그들은 손을 놓는다. 차단은 삭제가 아니라 새로고침이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클럽, 새로운 뒷골목이 기다린다.
나는 왜 이 쓸쾌한 소멸에 끌리는가
어쩌면 나는 사라지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사라지는 그를, 사라지는 나를. 그러면 우리는 다시 0초로 돌아가서 새로운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다. 영원하지 않은 것만이 영원하다는 착각 속에서.
초기 관계는 언제나 지속 불가능한 것에 대한 환희다. 24시간 동안만 유효한 민낯,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민낯. 스냅챗은 이 사이클을 가속화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7초마다 소비하고, 24시간마다 무덤에 묻는다.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원한 전부가 아닐까.
새벽 3시 42분, 다시 열리는 어플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스냅챗을 켰다. 새로운 스토리들이 쌓여 있다. 파란 조명, 빨간 네온, 뒷골목의 숨소리. 나는 또 다른 ‘blue_something’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나에게 내일 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8시간 뒤, 나는 눈을 뜨고 다시 확인할 것이다. 회색 비행기 아이콘.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라, 사라질 가능성을 원하는 건 아닐까. 사라지면서도, 우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회색 비행기가 될지도 모르는,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