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너랑 나는 뭘까?"
새벽 3시 14분. 홍대 뒷골목 모텔 침대에서 지수는 내 팔뼈를 손가락으로 그리고 있었다. 시계가 3:15로 넘어가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뭘까.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세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물고 있었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 때마다 "더워"라고 속삭였다. 요즘 회사에서 제일 핫한 인턴이라더니, 그 뜨거움이 왜 나한테로 향했는지 모르겠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아무 말이나.
"우리... 그냥 좋은 사이?"
지수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갔다. 물소리가 멈추고, 그녀는 말없이 옷을 입었다. 아이폰 충전기를 챙기면서 한 마디.
"나 내일 회식 있어서..."
그게 마지막이었다.
얼음처럼 식어버린 대화
다음 날 카톡은 회색 물음표였다. 읽씹 1. 읽씹 2.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우리가 지난주에 찍은 것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밥 먹었어?"라고 보냈다. 그러다가 "아프냐?" "바빠?" "무슨 일 있어?"
사람이 사라질 때는 정말 조용하다.
욕망의 해부실
왜 사람들은 뜨거웠다가도 차갑게 식을까?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냥 못 본 척하는 것뿐.
초기의 뜨거움은 결핍의 온도이다. 내가 부족한 것, 너가 채워줄 것 같은 그 환상. 하지만 그 환상이 너무 빨리 현실이 되면, 갑자기 왜곡된다.
우리는 서로를 '프로젝트'로 착각한다.
- '이 사람과 나는 특별할 거야'
- '이 관계는 남들과 다르겠지'
- '우리는 이미 무언가 시작했어'
그러나 그건 모두 가짜다. 우리는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그냥 두 개의 육체가 서로의 공백을 잠시 채워준 것뿐. 하지만 그 공백이 너무 달콤해지면, 갑자기 두려워진다.
내가 이렇게까지 원하는 게 맞을까? 이 사람이 나를 더 원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차단한다. 마치 도박에서 잭팟을 터뜨리기 전에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처럼.
첫 번째 사례: 준호와 민지
'카지노 연애'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준호는 마케팅팀 과장. 민지는 신입 디자이너. 회사 워크샵에서 처음 만났다. 민지는 준호가 회의 때 말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 나한테 관심 있어?
그 날 밤 술자리에서 민지가 준호 옆에 앉았다. 손이 살짝 닿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준호는 민지에게 연락했다. 카톡 1. "민지씨, 오늘 회의 내용 정리 좀..." 카톡 2. "아, 그리고 저녁에 시간 되시면..."
세 번째 데이트는 그의 집이었다. 민지는 준호의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속삭였다.
"너무 좋아. 너랑 있으면..."
그러나 다음 날 민지는 갑자기 "정신이 좀 복잡해졌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눈을 피했다. 준호는 혼자 술을 마셨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사실은 아니었다. 민지는 그날 밤 준호가 너무 따뜻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한 썸이 아니라, '관계'였다. 그리고 그건 민지가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했던 건 가능성이었다.
우리가 될 수도 있는 그 떨림
하지만 실제로 되어버리면 그건 더 이상 떨림이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두 번째 사례: 연진과 상혁
연진은 31세, 이커머스 MD. 상혁은 29세, 스타트업 개발자.
처음 만난 건 어플이었다. 상혁은 프로필에 '연애는 아님'이라고 적어놨다. 연진도 똑같이 적었다. 그래서 더 끌렸다.
첫 날 만나서 술을 마셨다. 연진이 상혁의 손을 잡았다.
"우리, 오늘은 그냥... 오늘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목을 쥐었다.
둘째 만남은 호텔이었다. 연진은 상혁의 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그냥 이 정도?
셋째 만남은 상혁의 회사 근처였다. 술을 마시고, 키스를 하고, 그러나 상혁이 갑자기 말했다.
"나, 다음 주에 해외 출장 가. 일본."
연진은 웃었다.
"그래, 재밌게 다녀와."
그러나 상혁이 돌아오지 않았다. 카톡은 회색 화살표만 있었다. 연진은 혼자 그 호텔에 다시 갔다. 같은 방을 예약했다. 혼자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더 원했던 건가?
아니었다. 그녀가 원했던 건 그 떨림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원하는 그 순간. 하지만 상혁은 그 떨림을 너무 빨리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더 이상 떨림이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와의 관계였다.
우리가 이것에 끌리는 진짜 이유
사실 우리는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다. 사랑의 가능성을 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조기 철회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건 너무 진지하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완벽한 관계.
그 관계에서는:
- 아직 실수를 안 했으니까 미안하지 않다
- 아직 상처를 안 줬으니까 죄책감이 없다
- 아직 약속을 안 했으니까 책임이 없다
그래서 사라진다. 사라지는 건 관계를 끝내는 게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완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마지막 질문
그래서, 당신도 그랬을까?
술에 취해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정말로 그 사람을 원했던 건가?
아니면 그 사람과 당신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원했던 건가?
그리고 그게 딱히 현실이 되려 하자, 갑자기 두려워졌던 건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답을 못한다.
우리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