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2년 반을 속였다, 동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걸려

친구인 척 지켜봤던 그가 결국 동료의 품에 떨어졌다. 900일 넘게 감춘 욕망과 함께.

동료연애금기의욕망관계파괴소속감의집착사무실정사

그녀가 복사기 앞에서 웃는다. 다정한 손길로 그의 깃털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키득거린다. 당신은 칸막이 뒤에서 숨을 삼킨다. "야, 점심 같이 먹자"라는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네가 먼저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둘만의 비밀.


훔쳐본 시간들

2년 7개월. 정확히 943일째다.

처음엔 그냥 웃는 게 예뻐서였다. 승진 축하 샴페인에서 손에 손을 맞대던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당신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날 밤 집에 와서도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샤워하면서도, 잠들기 직전까지.

점심시간마다 "우리 팀끼리만"이라는 막연한 경계를 그었다. 커피 한잔 사주면서도 "친구니까"라는 핑계를 달았다. 그녀가 힘들다고 하면 밤새워 보고서를 다시 써줬다. 나는 그냥 착한 동료일 뿐이야. 그런데 착한 동료는 왜 새벽 3시에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확대해서 보고 있었을까.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가 당신이 아닌, 바로 옆자리 민재에게 다가가는 걸 본 순간. 민재는 당신과 점심 먹고, 술 마시고, 퇴근길을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형이 먼저 알았잖아"라며 손을 흔들던 그 사람에게.


숨겨진 욕망의 얼굴

내가 먼저였는데, 왜 그가 가져가는 거야?

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당신이 원한 건 그녀 자체가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943일 동안 당신은 그 순간을 연기해왔다. 먼저 고백하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러나 민재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다.

사실 당신은 알고 있었다. 이건 게임이었다는 걸. 누가 먼저 고백하느냐의 승부였다. 그리고 당신은 지고 말았다. 하지만 더 참혹한 건, 패배를 인정하기보단 '그녀는 속았다', *'민재는 나를 배신했다'*라고 믿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지하철 2호선에서 벌어진 일

"유진아, 잠깐만."

금요일 저녁 7시 23분. 당신은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서울역 플랫폼, 사람들이 휘몰아치는 틈바구니. 그녀는 당황해서 뒤돌아봤다.

"...오빠?"

이름이 아니라 '오빠'라는 호칭이었다. 2년 반 동안 당신은 그녀에게 그냥 '오빠'였다. 민재에게는 '재야'라고 불렸을 테고.

"우리 얘기 좀 하자."

"지금? 여기서? 민재가..."

"민재는 모르는 거야."

순간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깨달았다. 이 2년 반 동안 당신이 느껴온 것을. 그녀는 뒤로 물러났다. "미안해요. 저... 진짜 몰랐어요."

하지만 당신은 알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냥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아니, 당신이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을 뿐이다.


민재의 결혼식 초대장

한 달 후, 회사 책상 위에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박민재 ♥ 이유진' 초대장이었다. 당신은 그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뒷면에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형, 정말로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유진이가 먼저...'

메모는 거기서 끝났다. 민재가 먼저 키스했다는 건가, 먼저 사랑했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당신이 먼저 아니라는 뜻일까.

그날 퇴근길, 당신은 초대장을 지하철 바닥에 떨어뜨렸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하얀 종이는 검게 변해갔다. 마치 2년 반 동안 지켜온 당신의 순수함이 더럽혀지는 것처럼.


우리는 왜 이 늪에 빠지는가

심리학자들은 이걸 **'사회적 귀속 욕구'**라고 부른다. 같은 팀, 같은 공간,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을 갖고 싶어하는 본능. 하지만 더 깊은 건 배타성이다.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특별한 관계를 원한다는 욕망.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더 잔인하다. 매일 마주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람.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그녀. 이 간극이 욕망을 키운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말

민재와 유진은 결혼했다. 아이도 생겼다. 아직도 같은 회사, 다른 부서에서 일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민재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걸.

2년 반을 속인 건 그녀가 아니라 너였다.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끝까지 모르는 척했던 너. 지금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니 가슴이 아프다면, 그건 아직도 네가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끝낸 그날의 너를 용서하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그녀에게 솔직해진다 해도 되돌릴 수 있을까. 아니, 진짜 물어야 할 건 이것일지도 모른다. 네가 원하는 게 그녀의 사랑인지, 아니면 단지 2년 반의 거짓말이 끝나버린 지금,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마침내 인정하고 싶은 건지.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