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20년 질식의 밤을 깨운 그녀의 체취

무릎 위로 내려앉은 그녀의 숨결, 콘독조차 없던 그의 20년을 뒤흔든 순간. 왜 우리는 위험을 외치는 몸에 더 깊이 파묻히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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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질식의 밤을 깨운 그녀의 체취

첫 숨결

  • 이건 안 돼, 하고 준혁이 말했다.
  • 그러나 손은 이미 그녀의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침대 옆 조명 하나.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물방울 소리. 준혁은 43년 인생에서 콘독 한 번 써본 적 없었다. 아내 민정과 관계를 시작한 건 99년, 대학 시절. 그때도, 신혼 때도, 아이 낳고 나서도. 피임은 민정이 알아서 해.

지금, 2024년 5월 12일 새벽 2시 17분. 회사 신입사원 유진이 무릎으로 기어올라온다. 스무 살 터울 나는 여자. 실리콘 냄새조차 없는, 오롯이 살과 숨만 남긴 공기.


숨겨진 계산

왜 민정은 20년째 콘독을 꺼렸을까. 왜 준혁은 물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같은 실수처럼 서로의 욕망을 지웠다.

하나로 퉁치자, 민정이 말했다. 아이가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고. 뭐가 문제야.

문제는 그 뒤에 있었다. 아내의 몸이 아닌, 아내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쾌감. 어떤 위험도 내 몸이 아닌 너의 책임으로 넘기는 안도감. 준혁은 그걸 사랑이라 착각했다.


시뮬레이션된 진실

사례 1. 승하, 38세, 약사

남편과는 12년째 콘독 없이. 그녀는 매번 배란일을 엑셀로 기록한다. 가장 가임률 높은 날엔 이유 없이 머리를 아프다고 한다. 남편은 그걸 몸이 지친 것이라 믿는다.

작년, 동네 헬스 트레이너 정우와 한 차례. 그날도 정우가 콘독을 꺼내자 승하는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래도 괜찮아. 나 임신 안 되게 해줘.

정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승하는 그 찰나를 마시고 싶었다. 내가 너를 조종하는 순간.

사례 2. 도윤, 45세, 변호사

아내와는 18년째, 콘독 대신 약. 그러나 아내가 먹는 피임약 이름도 모른다. 양주잔 사이에 떨어진 한 알을 주워 삼킨 적도 있다.

그게 습관이 되던 어느 날, 오피스텔에서 만난 클라이언트 지연이 물었다.

  • 오빠는 콘독 써요?

도윤은 처음으로 자신의 대답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서랍에서 콘독을 꺼낼 때, 도윤은 갑자기 목이 메었다. 이건 내가 아닌 거야. 그러나 초록색 포장이 찢기는 소리에 홀린 듯 몸을 맡겼다.


막다른 욕망의 법칙

우리는 왜 굳이 뚜껑을 열고 싶어할까.

심리학자들은 통제감 상실이라 말한다. 20년 동안 통제해온 것을, 단 하루 만에 부숴버리는 쾌감. 또는 반대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통제를 맡기는 안도.

내가 아프면 되니까, 당신은 건드리지 않아도 돼.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준혁은 그걸 사랑이라고 또 받아들였다.


스물한 번째 충격

유진이 준혁의 턱을 잡았다.

  • 선배, 싫으면 그냥 가도 돼.

그녀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맥박. 준혁은 그 맥박 속에 자신의 20년이 담긴다는 걸 알았다. 콘독 하나 없던 시간, 아내의 몸만큼이나 낯선 이 떨림.

침묵이 깊어졌다. 유진의 몸이 닿는 순간, 준혁은 처음으로 감각을 잊었다. 허공.


거울 끝

준혁이 눈을 떴을 때 유진은 없었다. 카운터 위에 남은 초록색 포장 하나. 사용되지 않은 콘독.

그가 손을 뻗었다. 뜯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민정아, 나 오늘...

말이 잘리기 전, 민정이 웃었다.

  • 그래, 그래도 돼. 다만 너가 책임져야 해.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대로였다. 준혁은 아직도 모른다.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고 싶은지.


당신은 20년의 안전벨트를 풀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안전벨트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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