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은 밀실에서만 가능했어
“딸이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민지 앞에선 절대 모른 척해야 했다. 그녀의 엄마가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53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철학 강의실 뒷문, 그가 문을 잠그는 소리. 민지의 숨소리가 떨린다. 처음엔 다 이해한다고, 연애는 개인의 자유라고 했던 내가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다.
그가 주는 건 결국 두려움의 달콤함
33년 차 연하남을 만난 여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건, 결국 “보호받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보호는 곧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주장으로 변질된다. 그는 민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어 마디마다 파고들며, 미래를 설계하는 척하면서 실은 민지의 선택지를 하나씩 지운다.
민지는 그에게서 ‘아빠’라는 단어를 들을 때 가장 격렬해진다고 했다. 그 단어는 키스 중에도, 벗겨질 때도 입 안에 퍼진다. 아빠, 아빠, 아빠. 그 반복은 민지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반복은 동시에 민지에게 ‘나는 아무에게도 속박되지 않아’라는 착각을 준다.
두 번의 밀실, 두 개의 진실
사례 1. 민지, 20세
민지는 나에게만 털어놓았다. 부모님께는 서른두 살 직장인이라고 했고, 동생에게는 아직 소개할 단계가 아니라며 넘겼다. 그녀의 룸메이트는 베란다에서 흘린 담배 연기만 봤다고 했다.
“선배님은… 제가 뭘 하든 다 알고 계세요.”
민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민지의 수업 시간표를 외우고 있었고, 민지가 어떤 책을 빌렸는지도 알고 있었다. 도서관 대출 기록을 확인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의 집 거실 큰 창문, 커튼을 절반만 치면 대학 정문이 보인다. 민지가 교문을 나설 때마다 그는 커피잔을 든 채 미소 짓는다. ‘우연히 마주친’ 척 하면서.
민지는 그의 집에 가는 날이면, 옷을 두 개씩 챙긴다. 하나는 부모님 앞에서 입던 ‘철학과 미래를 고민하는 평범한 20대’ 용. 다른 하나는 그의 침대에서 입을 ‘순종하는 연하녀’ 용. 옷을 갈아입는 순간, 민지는 두 명의 여자가 된다.
사례 2. 하은, 24세
하은은 5년 전 비슷한 관계를 경험했다. 지금은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그때는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녀는 그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미술계의 거물이라는 이유였다.
“그분은 제게 ‘너는 아직 네 색깔을 못 찾았어’ 라고 했죠. 근데 제가 그림을 바꾸면 또 ‘이건 네 진짜 색깔이 아니야’ 라고 하셨어요.”
하은은 결국 자신의 색깔을 잃었다. 졸업 전시 때는 그가 고른 주제를 그렸고, 그가 정한 색채를 썼다. 전시가 끝난 뒤, 그는 하은에게 한 말이 있다고 연락했다. ‘이제 너는 진짜 작가다’라고.
하지만 그날 이후, 하은은 붓을 들 수 없었다. 붓을 들면 ‘이건 진짜가 아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이후, 그녀의 작품은 작품이 아니었다. 그의 주문이었다.
금기를 움켜쥐는 손
우리는 왜 이 끔찍한 권력불균형에 끌리는가. 단순히 ‘보호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건 너무나 달콤한 거짓말이다.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건 ‘나를 지배할 권리를 남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실수한 건 ‘나’가 아니라 그를 선택한 ‘당시의 나’라고 말할 수 있다.
민지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만약 지금 이 만남을 그만둔다면, 난 뭘 잃는 걸까?’ 그녀는 잃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두려운 것이다.
53세 남자는 단순히 연상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시간’을 가진 존재다. 그 시간은 민지가 아직 걷지 못한 길을 이미 걸었고, 민지가 겪지 못한 실패를 이미 겪었다. 그 시간은 민지에게 ‘너는 아직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는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그 종이 위엔 이미 정해진 미래가 써 있다. 민지는 그 미래를 거부할 권리를 상실한다. 왜냐하면, 그 미래를 거부하는 순간 민지는 스무 살의 무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간 속에 있나
민지는 아직도 그에게 매일 밤 ‘오늘 뭐 했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답장이 없어도 미소 짓는다. 왜냐하면, 민지가 보내는 그 메시지 자체가 그를 선택했다는 증거니까.
가족은 평생 모를 것이다. 민지는 늘 ‘나중에’라고 미뤘다. 하지만 그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지는 그 미래를 맞이할 ‘순수한 민지’를 이미 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과연 누구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보호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 누구가 진짜 너를 지켜주는 건지, 너를 지배하기 위해 너를 만들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