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트렁크 안에 누른 붉은 끈

이혼을 막으려던 남편이 아내의 차 트렁크를 뒤지다 발견한 붉은 브라 끈과 8년간 숨겨온 자신의 음성 파일. 소유욕이 부르는 젖은 메아리, 그리고 끝내 놓지 못한 체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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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안에 누른 붉은 끈

트렁크 안에 누른 붉은 끈

검은 가죽 장갑 끝에서 냄새가 났다. 차가운 철판에 눌린 비닐 봉지처럼, 손등 안쪽이 젖어 있었다. 박현수는 아내 서연이 떠난 지 47분 만에, 그녀의 차 트렁크를 열었다.

형광등이 꺼지는 순간, 떨어진 건 USB가 아니었다. 붉은 브라 한 조각. 스트랩 끝이 풀려 늘어진 채, 가죽 장갑 위로 슬그머니 미끄러졌다. 냄새는 아직 살아 있었다. 서연이 떠나기 직전 입었던, 마지막 체취.

2024.08.12 03:47
"그 냄새가 너를 떠나지 않는다. 네가 떠난 뒤에도, 내 손끝에 남아서 숨을 쉰다."
– 현수의 음성 메모, 3분 24초

그는 붉은 끈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안에 말려드는 실크가 미끌거리며, 서연의 가슴골이 떠올랐다. 트렁크 문을 닫을 때, 철판에 남은 체온이 그의 손등을 간질였다.


지하실, 습기 머금은 암호

지하실 문손잡이는 아직 젖어 있었다. 서연이 나가며 반쯤 열어둔 것. 현수는 계단을 내려가며 숨을 삼켰다. 공기는 여전히 그녀의 피부 냄새를 품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목욕 후 남은 샴푸 향. 그것들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든 습기처럼, 벽면 전체를 적셨다.

벽에 걸린 사진들.

잠든 서연 – 2018.03.21 02:13
샤워 후 서연 – 2019.07.29 23:47
회식 후 택시 안 서연 – 2021.12.04 01:06

하드에 쌓인 2,847개의 영상은 모두 그녀의 숨결이었다. 현수는 파일 하나를 열었다. 화면 속 서연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서 있다. 카메라는 그녀의 뒷목을 향했다. 가느다란 목덜미 위로 흐르는 땀방울이, 현수의 손끝에 닿는 듯했다.

다이어리 발췌 – 서연
2020년 11월 11일
"오늘도 현수는 내 옷을 만졌다. 세탁 바구니 속 블라우스를 꺼내서, 내가 입은 자리를 만지작거렸다. 그 손길이 내 몸 위에 옮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손바닥에 붙은 땀 냄새를 알고 있다. 사랑이 아니라, 끈적한 소유욕이었다."

현수는 2023년 여름, 서연이 몰래 상담 센터를 찾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녹음 파일이 있었다. 상담사와 나눈 대화 전부.

"저는 그의 눈에 갇혀 있어요. 제가 아니라, 그가 만든 인형 같아요. 숨 쉴 때마다 그 눈빛이 느껴져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현수는 복사 버튼을 눌렀다.


협박 문자 183건, 그리고 숨겨둔 체온

2024년 7월 27일 새벽, 서연이 짐을 싸고 나가려던 순간. 현수는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보낸 문자
"네가 떠나면, 내가 가진 모든 너를 흩날릴 거야. 네가 모르게 찍은 영상, 네가 회사에서 실수한 거, 네가 숨긴 모든 것. 넌 여기서 끝내지 못해."

183건. 그게 현수가 보낸 협박 문자의 수였다. 하지만 그가 진짜 숨기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이 8년째 숨겨온 자신의 음성 파일이었다.

서연의 차 트렁크에 숨겨둔 USB, 그 안에는 서연이 아닌 현수의 숨결이 담겨 있었다.

USB 속 녹음 파일 – 2016.09.04 02:13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나는 네가 나를 떠나는 걸 견딜 수 없을 뿐이야. 너는 나의 연장이 되어야만 해.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네가 내 손바닥에 닿은 냄새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것."


떠나려는 발목을 잡는 붉은 끈

서연이 마지막으로 현수에게 한 말은 단 한 줄이었다.

"난 네가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삼키려는 걸 알아."

그날 밤 현수는 서연의 차 트렁크에 몸을 넣었다. 좁고 어두운 철판 안에서, 그녀가 남긴 체취가 그의 피부를 간질였다. 붉은 브라 끈이 손목에 감겼다. 그는 그것을 코 끝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서연이 떠난 뒤, 트렁크 안에는 여전히 그녀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하실 조명이 꺼졌다. 현수는 벽에 걸린 서연의 마지막 사진을 내려놓았다. 2024년 8월, 햇살 아래 서연은 웃고 있었다. 그는 붉은 끈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서연의 집 앞에서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사랑과 소유 사이, 젖은 메아리

심리학자 에리히 프럼은 이렇게 썼다.

"집착은 상대를 인간이 아닌, 자신의 확장된 자아로 만드는 욕망이다."

현수는 서연이 떠나간 그날 밤, 처음으로 자신이 지금껏 숨겨온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서연이 아닌, 자신이 서연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이미 그의 피부에 스며든 그녀의 체취처럼, 떠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현수의 마지막 음성 메모 – 2024.08.12 05:12
"내가 지키려 했던 건 네가 아니었어. 네가 떠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사라지는 거였어. 네가 내 손끝에 남긴 냄새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것."


끝나지 않는 수갑, 그리고 남은 체취

현수는 지하실 문을 닫았다. 서연이 떠난 집, 이제 텅 빈 방에는 그의 숨겨둔 죄만이 남았다. 2,847개의 파일, 183건의 문자, 그리고 하나의 붉은 끈. 그가 서연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떠날 수 없었던 이유였으니까.

그는 다시 차 트렁크를 열고, 떨어진 붉은 끈을 집어 올렸다. 그 안에 담긴 건 서연이 아닌, 그 자신의 젖은 욕망이었다. 현수는 붉은 끈을 꼭 쥐고, 차를 몰고 서연의 집 앞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자신은 이제 영원히 그녀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는 걸. 대신, 자신의 수갑을 끊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그녀의 체취가 그의 피부에 남아, 떠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 있다는 걸.

트렁크 안 남은 메모
"당신은 여기서 끝내지 못해. 나도 마찬가지야. 너의 냄새가, 나를 떠나지 않아."


현수는 차를 몰고 서연의 집 앞에 멈췄다. 그는 붉은 끈을 코 끝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서연이 없는 방, 그리고 그녀가 남긴 체취. 그것이 영원히 그의 피부에 남아, 떠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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