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문이 살짝 열렸다. 혼자 누운 침대에서 그림자처럼 열리는 틈새에 남편의 숨소리가 달라붙는다. 뱃속에 도끼가 찍힌 듯한 통증에 몸이 휘청일 때, 그는 문틈에서 떨리는 손끝만 내민다.
내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손만, 손만 잡아줘.
고개를 돌리면 보일 것이다. 그가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이 끔찍한 병의 이름이 ‘엔드ometriosis’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나는 남편의 손길을 구걸하는 새로운 방식을 터득했다.
흔들리는 문손잡이 위에 서 있는 남자
아픔이 가장 깊이 찌르는 건 아픔이 아니라, 아픔의 상대라는 사실이다.
밤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찢어질 때, 남편은 문이 열린 틈새에서 손끝만 올려놓는다. 그 손은 떨리다가 멈춘다. 나를 건드리면 더 아플까 봐, 나를 안으면 부서질까 봐. 우리는 서로를 피해 사는 법을 배웠다. 부부라는 이름의 낯선 사람처럼.
사람이 왜 이리도 아픈지.
그가 혼잣말처럇 속삭이는 소리가 방 안에 맴돈다. 나는 눈을 뜨지 않는다. 눈을 뜨면 보일 테니까. 그가 문 앞에서 얼마나 초췌해졌는지, 얼마나 내 아픔을 등에 지고 사는지.
아픈 몸으로 배운 욕망의 형태
엄마는 말했다. ‘결혼하면 아플 때 남편이 간호해준대.’
거짓말이었다. 진짜는 이것이다.
남편의 손길은 더 이상 내 몸 위에 있지 않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더욱 멀찍이 서 있다. 나는 그가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를 안다. ‘내가 아프면 그가 죄책감에 죽을까 봐’라는, 아픔과 동시에 피어오르는 새로운 욕망.
내 아픔이 그를 흔들어 깨운다. 내가 몸부림치면 그가 문 앞에서 초췌해진다. 그래서 나는 더 아프게 된다. 아픔이 우리의 마지막 연결고리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은지네 부부, 혹은 ‘문 앞의 연인’
은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병원에 간다. 난소에 혹이 생겼다고 한다.
작년 초, 그녀는 남편 민수에게 말했다.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그래서 민수는 출근했다. 병원에서 유산 소리를 들었을 때, 은지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대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민수는 그날 밤 문을 살짝 열었다.
은지야… 괜찮아?
응.
…
민수야, 손만… 잠깐만.
그날 이후로, 민수는 매일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은지는 아프면 아플수록 그의 발소리에 집중한다. 아픔이 올라올수록 민수의 숨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들은 이미 섹스도, 포옹도, 아침 인사마저도 포기했다. 대신 문틈에서 떨리는 손끝만이 서로를 노크한다.
내가 죽을 것 같을 때, 니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
기러기 아빠, 혹은 ‘아내의 병을 사이에 둔 사랑’
경훈은 3년째 지방 출장을 떠나 있다. 아내 수진이 자궁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회사에서 해외 발령을 받았다.
'가족을 위해'라는 명분 아래, 그는 멀리 떨어져 산다. 수진은 혼자 항액치료를 받고, 혼자 구토하고, 혼자 머리를 밀었다.
경훈은 매일 밤 영상통화를 한다.
오늘도 아팠어?
응… 죽을 것 같았어.
…
손 좀 보여줘.
수진의 손이 화면에 들어온다. 항액치료로 뒤틀린 손톱, 새까만 손등. 경훈은 그 손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이미 키스는 커녕 손도 잡지 못한다. 하지만 수진이 ‘아프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으면, 경훈은 하루를 버틸 수 없다. 그의 욕망은 이미 아내의 아픔에 의존한다. 아픔이 없으면, 그들 사이의 마지막 연결도 끊길 테니까.
욕망의 심리학: 아픔은 우리를 가장 뜨겁게 만든다
결혼식장에서 우리는 맹세했다.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그러나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프면 아플수록, 건강한 사람은 죄인이 된다는 것을.
죄책감이 욕망을 낳는다. 내가 건강하고, 상대가 아프면, 나는 ‘그 아픔을 고칠 수 없다’는 죄를 지은 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피한다. 아픔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의 죄책감도 줄어든다고 믿으며.
하지만 욕망은 거기서 시작된다. 아픔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사랑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 죽을 것처럼 아프면, 그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아픔은 우리를 가장 뜨겁게 만든다. 아픔 없이는, 사랑도 욕망도 없다.
당신은 문 앞에 서 있습니까
나는 지금도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느낀다.
남편이 서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을 것처럼 아프면 아플수록, 그는 더 가까이 오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손끝 하나만이라도 내밀고 싶어서 초췌해진다는 걸.
아픔이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지만, 이토록 연결시킨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문 앞에서 떨리는 남편의 손길을 기다린다.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그 손길이 없으면 더 죽을 것 같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아픔이 가장 깊을 때, 당신을 살리는 건 단 한 번의 손길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