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동생이 ‘거지’ 남편감은 소각장 가라던 밤, 나는 데이팅앱 연봉 필터를 100억으로 찍었다

동생이 가난한 남자를 ‘쓰레기’라던 그날 밤, 나는 데이팅앱 연봉 필터를 100억으로 돌렸다. 숫자가 치솟을수록 심장은 가라앉았다. 우리는 결국 돈 없는 사랑을 태우고, 스스로를 재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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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팅남, 연봉 4천에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집값이 오르면 더 늦게 퇴근한다던데?”

동생은 맥주캔을 따며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 내가 눈치를 주려고 하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로질러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연봉 4천도 안 되는데, 장래가 없잖아. 요즘은 그냥 쓰레기지.”

술집 형광등이 시시각각 떨렸다. 나는 군만두를 집어 입에 넣었다. 기름이 혀끝을 데웠지만 아무 맛도 났다가 사라졌다. 29년을 같이 살며 처음 들은 단어, 쓰레기. 손바닥만 한 휴대폰 속 연락처들이 눈앞에서 줄줄이 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갔다.


화장실로 일어났다. 좁은 칸 문을 닫자마자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았다. 휴대폰을 꺼냈을 때, 잠금 해제 화면에는 언니와 문자가 남아 있었다. ‘이번엔 괜찮은 사람 나온대?’ 나는 대답 대신 데이팅앱을 켰다.

필터 설정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연봉 3천만 원 이상이 찍혀 있었다. 그 숫자가 문득 초라해 보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숫자가 5천, 7천, 9천, 1억을 넘었다. 1억 5천, 2억, 3억. 나는 멈추지 않았다.

100억을 찍는 순간, 화면이 반짝였다. 대기업 CEO, 재벌 3세,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이 눈앞에서 파도치듯 쏟아졌다. 머릿속에서 동생의 말이 계속 메아리쳤다. 쓰레기.


화장실 칸 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맥주 캔 부딪치는 소리가 겹쳤다. 그때야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건 고백이었다. 나는, 우리는, 돈 없는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고백. 더 정확히는 사랑해도 되는지에 대한 끝없는 자격지심이었다.

거울을 봤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졌다. 3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였다. 그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연애할 땐 괜찮았다. 그때는. 지금은 그때의 나도, 그때의 그도 믿기지 않는다. 연봉 4천의 그가 내게 ‘결혼하자’고 했던 그날, 나는 왜 말없이 고개를 저었을까. 그때는 단순히 ‘이 사람 말고’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 수준 말고’였다.


동생과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플랫폼에서 그녀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언니, 나 진짜 나쁜 사람인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광판에 떠 있는 시간만이 씩씩하게 흘렀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방에 누웠다. 천장이 물결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데이팅앱을 켰다. 필터를 1억 이상으로 다시 맞췄다. 매칭된 프로필들이 쭉 떴다. 모두가 잘생기고, 똑똑하고, 돈 많고. 그리고 뭔가 허전했다.

새벽 3시가 되자 나는 필터를 내렸다. 3천에서 5천으로, 7천에서 4천으로, 마지막으로 3천만 원 이상으로 돌렸다.

그래도 우리는 결국 이 숫자를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그래도를 붙이며 살아간다.
그래도…

동생과 나, 우리는 금기를 건드리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를 쓰레기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나는 휴대폰을 껐다. 창밖으로 새벽이 드리워졌다. 아직 아무도 없는 거리가 고요했다. 그 고요가 우리를, 우리의 욕망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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