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의 칫솔을 입에 넣는 순간, 키스보다 더 치명적인 것을 알았다

칫솔 한 자루가 관계의 마지노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왜 더 격렬하게 원하게 되는가. 깨물고 싶은 욕망과 침맞고 싶은 두려움 사이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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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에서 흘러내린 거품이 마르면

여주는 화장실에 들어섰다 나섰다를 반복했다. 문은 딱 한 번 열렸다. 승현이 건네준 칫솔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뻔했다. ‘내일 출근하려면 어차피 써야지’라는 변명이 굳어지기도 전에 거품이 이미 입에 차올랐다. 얼굴이 빨개지는 건 뜨거운 물 때문이라고 했지만, 여주는 거울에 비친 칫솔모가 승현의 잇몸을 어루만진 상상에 숨이 턱 막혔다.

뒷정리는 승현이 했다. 여주가 나간 뒤, 수건으로 칫솔을 살짝 덮고 나서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으로 모를 쓰다듬었다. 내년엔 이게 내 칫솔이었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네 침이 남은 자리, 내 침이 차지할 테니

키스는 실수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술, 호기심, 분위기. 하지만 칫솔은 다르다. 칫솔은 계획이다.

키스는 순간을 맛보는 것이고, 칫솔은 그 순간이 너의 하루를 관통한다는 선언이다. 누군가의 입 속을 헤집던 나일론모가 이제 당신에게 들어간다. 끈적한 침과 치약이 뒤섞인 냄새를 너는 그대로 품고 잠든다. 그것은 단순한 공유가 아니라, 한 사람의 아침을 다른 사람의 아침으로 편입시키는 의식이다.

우리는 왜 이 의식이 더 음습하게 느껴질까? 왜냐면 키스는 여전히 ‘밖’에 관한 행위이지만, 칫솔은 ‘안’의 지형을 탐험하기 때문이다. 키스할 때는 혀를 만지지만, 칫솔을 나눌 땐 잇몸 틈새의 냄새까지도 공유한다.


예린과 도윤, 47일차

도윤은 치과의사였다. 예린이 심하게 충치난 어금니를 보며,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의 색감을 떠올렸다. 새하얀 블라우스에 흰 미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있어도 자신의 진료대 위에 누워 있어도 희끄무레하다고만 느껴졌다. 그런데 노란 충치를 치료하다 보니, 그녀의 입 안이 얼마나 따뜻하고 습한지를 알게 되었다.

치료가 끝난 뒤, 도윤은 늘 퇴근길에 일부러 예린의 집 앞을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날, 예린이 그를 불러 세웠다. “치약 좀 빌려 주실래요? 내가 다 써버렸어요.” 그녀는 부끄러운지 발뒤꿈치로 문살을 긁었다. 도윤은 냉장고에서 한 번도 개봉하지 않은 치약을 건넸다. 그리고 다음 날, 예린의 칫솔이 그의 칫솔 걸이에 꽂혀 있었다. 회색모의 칫솔. 도윤은 그날 밤 칫솔모 사이에 끼어 있을지 모를 예린의 혓바닥을 혀로 훑었다. 아직 키스는 없었지만, 그녀의 침샘이 그의 잇몸을 간질이고 있었다.


지아와 민수, 3개월째

지아는 매일 밤 칫솔을 세게 문지른다. 민수의 칫솔과 자신의 칫솔이 서로를 훑을까 봐 걱정돼서. 민수는 한 번도 그녀에게 칫솔을 빌려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면대 위에 놓인 그의 칫솔이 젖어 있을 때마다 그녀는 불안했다. 혹시 아닌가? 혹시 옆집 여자가 쓴 건 아닌가?

그래서 지아는 은근슬쩍 민수의 칫솔을 집어 들었다. 그의 잇몸 라인에 맞춰 자신의 잇몸을 문지르고, 그의 혀 자국을 따라 자신의 혀를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칫솔이 민수에게도 이미 들려 있지 않을까 하는 떨림이 밀려왔다. 민수는 키스는 서툴렀지만, 칫솔을 고르는 데는 까다로웠다. 그가 고른 초록색 칫솔은 지아가 아파서 열이 날 때 쓰던 색깔이었다. 그걸 본 순간 지아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왜 우리는 침뱉는 짓을 하고 싶은가

프로이트는 구강기 욕망을 말했다. 빨고 물고 깨물고. 하지만 우리가 칫솔을 나누고 싶은 건 단순한 구강 욕망의 문제가 아니다. 칫솔은 관계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상실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다.

키스는 ‘나’와 ‘너’를 둘로 나눈다. 입술은 경계다. 그러나 칫솔은 ‘나’를 ‘너’로 녹여버린다. 남의 침이 내 식도에 들어가는 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보상으로 이어진다. 너의 아침의 온도와 습도, 잇몸의 흔들림과 혀의 굴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확신이.

우리는 금기를 사랑한다. 금기는 욕망을 날카롭게 만든다. 그래서 칫솔 나눔은 키스보다 더 은밀하고 더 치명적인 것이다. 키스는 누가 봐도 안다. 하지만 칫솔은 모른다. 그것은 오직 당신과 나만이 아는, 침묵으로 맺어진 동맹이다.


내일 아침, 너의 칫솔이 내 칫솔이 될까

그래서 나는 묻는다. 너는 누군가의 칫솔을 입에 넣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입안에 남겨진 그의 숨결을 닦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화장실 조명 아래 너의 칫솔모가 떨리고 있는데, 그건 너의 불안이 아니라 그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너는 어떤 사람의 첫 직장을 떠나는 아침, 어떤 사람의 첫 키스를 앞둔 아침, 어떤 사람의 첫 이별을 맞이하는 아침을 살아내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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