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은 끝났나?"
그는 문 앞에서 서 있었다. 화려한 호텔 스위트 침대 위로 가운을 두른 채 나는 움찔했다. 48년을 산 남자가 이불 끝을 잡아당기자 에어컨보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았다.
이불 속은 서늘했다. 그가 먼저 들어가 누운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체온 하나 없는 실크가 내 몸을 덮콤했다. 난 26세, 아직 체온보다 뜨거운 욕망만 남아 있던 나이였다.
체온이 지워진 곳
‘이 사람은 누구와도 품은 적이 없나? 아니면 나만 품지 않는 건가?’
그는 눈을 감았다. 손은 내 가슴 위에 올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20년 넘게 사업의 최고 자리에 있던 사람은 누구보다 온기를 아끼는 법을 알았다. 눈길 한 번으로 상대를 움직이고, 손끝 한 번으로 계약을 끝내는 사람.
나는 그가 불러준 콜걸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면 모를 이야기를 해줬다. 아내와의 이혼, 딸이 대학 합격했다는 소식, 그리고 회장님 죽음 직전 들은 말 한마디.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이불은 여전히 차갑고, 그의 손은 절대 내 속옷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손끝이 아닌 서류가 먼저 온 순간
"도윤 씨, 커피 마실래요?"
지하주차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렇게 물었다. 회사 미팅 장소를 바꿔달라는 문자 한 통이었다. 26세 인턴의 휴대폰으로 온 ‘회장님 개인 번호’. 나는 그날 회의실 대신 호텔 라운지에 앉았고, 그는 나의 얼굴 대신 내 손에 쥔 펜을 봤다.
그날 이후로 매주 목요일마다 그의 집으로 향했다. 48평 아파트, 침대는 킹사이즈였지만 쓰지 않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나에게 보고서를 읽어달라고 했다. 내가 읽는 동안 그는 다리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나보다 먼 곳을 봤다.
‘내가 하는 말은 그의 귀엔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닐까. 나는 그냥 회사 자판이고, 이 방은 그의 개인 서재일 뿐이야.’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는 늘 나보다 30cm 위에 있었고, 나는 그 아래에 있었다. 키스 한 번 없이, 말 한 마디 없이,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계약서 위에 서명한 셈이었다.
식은 계약서 위로
"우리, 오늘은 그냥 잘까?"
어느 목요일 밤이었다. 그는 내가 가지고 간 와인 한 병을 보고 미소 지었다. 하지만 잔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인턴 전환 계약서’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 서명만 하면 돼.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펜을 잡았다. 하지만 서명하려는 순간 입술이 떨렸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불 위에 앉아 있는 나와 그 사이에 서류만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와의 ‘계약’이 아니라 나를 ‘계약’으로 만들고 싶은 거였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싫어?"
"아니요. 그냥... 너무 차가워서요."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역시나 차가웠다. 48년을 산 사람의 심장은 이미 누구도 데울 수 없는 온도였다.
서른 번째 목요일의 선택
그날 이후로 나는 그의 집에 가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그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인턴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그에게 연락했다.
"회장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길지 않았다. ‘오늘 밤 9시, 예전처럼’. 나는 그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들어갔다. 침대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나는 이불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왜... 저한테는 안 그러셨죠?"
그는 대답 대신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에는 아직도 서리가 낀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원했던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약속이 아니라, 그가 두려워하는 약속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가 가진 카드키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그를 품지 않았다. 대신 내가 떠날 때 그의 침대는 아직도 차가웠다.
우리는 왜 연상의 차가운 침대에 끌리는가? 그건 어쩌면 우리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가진 차가움은 우리가 갖지 못한 세월의 무게이고, 우리가 주는 뜨거움은 그들이 잃어버린 시간의 메아리다.
그래서 48세 연상의 침대는 여전히 차갑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차가움을 품으려고 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체온이 필요한가? 아니면 누군가의 차가움을 채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