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는 나의 혀

식탁 위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나. 한 글자도 발음하지 않는 침묵이 창조한 공백에서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가족침묵트라우마증오욕망

“그 사람, 오늘도 안 오려나.”

엄마의 속살이 국물 너머로 흘러왔다. 붉은 얀골이 으스러지듯 붉은 소고기 살점이 으깨졌다. 나는 국그릇을 내려놓고 식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발가락 사이로 난 스치듯 지나간 무릎. 뜨거운 피가 콧등까지 차올랐다. 아무도 모르게, 내 손등이 연지의 종아리를 어루만지는 척 스쳤다. 차가운 살결. 누가 눈치채길 바랐다. 아무도.


입을 다문 순간, 쇠사슬이 끊어졌다

처음엔 두려웠다. 혹시 엄마가 눈치채면 어떡하지. 혹시 연지가, 동준이가 알아차리면. 나는 매번 식탁 위에서 숨을 죽였다. 누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가슴이 쿵 떨어졌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도. 그래서 나는 더 깊게 파내려갔다. 아버지의 이름 대신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아직 퇴근 안 했니?”

엄마가 물으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사람은 점점 투명해졌고, 나는 점점 거대해졌다. 이건 단순한 무시가 아니었다. 이건 실행이었다. 내 입술을 봉인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실제로 죽였다. 한 자음도, 한 모음도 내뱉지 않으면 그는 존재할 수 없었다. 법정이 아닌 식탁 위에서, 배심원도 없이, 나는 그를 사형시켰다.

때로는 혼잣말로 ‘그 사람’이라 속삭일 때마다 혀끝이 경쾌하게 튕겼다. 입천장을 스치는 순간 살아 있는 듯한 그의 몸의 온기가 떠올랐다. 침묵 속에서 오히려 숨소리가 선명해졌다. 내 숨, 혹은 그의 숨.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미소년 지석과 변호사의 아들

고등학교 2학년, 반에 지석이 전학 왔을 때다. 지석은 아버지가 변호사라며 교실 한복판에서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누가 봐도 과시였지만, 나는 그날 점심 시간 도서관에서 그를 찾아갔다.

너 아빠가 뭘 하냐고? 검사야. 대단하네. …사실은 아니야. 뭐? 아무것도 안 해. 아예 없어.

나는 책상 위에서 양팔을 모아놓고 고개를 숙였다. 지석은 오래도록 나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나도 알았다. 우린 그날부터 비밀 친구가 되었다. 두 달 뒤, 지석이 아버지가 미닫이문을 부수고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석은 결석했고, 나는 생생한 상상을 했다. 미닫이가 삐걱이며 열리고, 그 끔찍한 존재가 침실로 들어오는 장면. 나는 몸서리쳤지만 동시에, 그래도 넌 이름을 말했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31살, 아직도 우리 집엔 네 개의 의자만 있다

설날 엄마가 제사상을 차렸다. 조상님께 올릴 명단을 써내려가며 엄마는 펜을 멈췄다.

너희 아버지 이름은… 뭐였더라?

동준이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찾으려다 말았다. 연지는 나를 힐끗 보았다. 나는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름은 이미 뱃속에 살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날 뜨거운 철판 위에서 내 손등을 두드리던 굵은 손가락. 국민학교 입학식, 검은 양복 냄새. 폭우 쏟아지던 날 학교 문 앞에서 서 있던 82년생 가죽장갑. 나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뱉어낼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입술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속삭였다.

모르겠어요.

엄마는 펜을 내려놓고 종이를 찢었다. 대신 빈 공간만 남겼다. 그 빈 공간이 나다.


왜 우리는 가족을 죽이고 싶어 하는가

프로이트는 살아 있는 아버지를 죽일 수 없으므로 아버지를 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했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신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죽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한 방에 유리창을 깨지 못해 조용히, 조각조각 파내는 방법을 택했다. 침묵은 가장 날카로운 도구다. 말 한마디가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면, 말하지 않음은 근육을 파내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시의 복수’라 부른다. 그러나 그건 너무 순진한 설명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재창조다. 아버지 없는 세계를 직접 설계하고 싶었다. 우리가 굴러다니던 믿음의 지도 위에 아예 대륙 하나를 지워버리는 일.


당신의 혀는 무엇을 아직도 지우고 있는가

오늘 밤, 당신도 식탁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 순간 당신의 입안에 무슨 맛이 날지. 피 맛이 날 수도, 묵은 먼지 맛이 날 수도, 아무 맛도 안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이미 살해당한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침묵은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왜 아직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가. 나는 묻는다. 당신이 입을 다무는 순간, 그 입안에서 살아 있는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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