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면 너머로만 서로의 입술을 훔쳐봤다. 세 번째 생일, 선배는 케이크 대신 볼에 살짝 머무는 키스를 보냈다. ‘다음엔 진짜.’ 그 말이 흔적처럼 남아 1,095일을 버텼다.
나는 왜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을까. 화장기 없는 얼굴, 늘어난 체지방, 눅녁이 된 살결까지 숨기지 않았다. 혹시 그가 싫증내면 오히려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밤 화면 속 그의 숨소리를 녹음해 두었다. 혼자 듣는 오디오 포르노.
그녀는 왜 아직도 ‘안 꾸며’ 있었을까
화상 통화는 죄책감을 낮추는 가장 완벽한 장치다. 필터, 각도, 조명. 커튼 너머로 목욕탕 냄새가 새어 나와도, 그는 미소만 지었다. ‘자연스러운 게 좋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36개월째 똑같은 체크남방을 입었다.
이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꾸미면 그가 더 이상 여기지 않을까’ 하는, 금기를 유지해야만 지속되는 욕망. 안 꾸는 행위 자체가 가장 은밀한 신호였다.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도 나를 바꾸지 마.’
사례 1. 유진, 28세, 디자이너
유진은 ‘현진 선배’라는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는 남자와 1,200일째 화상 데이트 중이다. 현진 선배는 대학 시절 단 한 번도 눈 맞은 적 없는, 그러나 DM으로 ‘책 추천 좀’이라며 먼저 건넨 선배다.
너는 아직도 안경 쓰니?
어, 난 렌즈 못 끼워
귀엽네
귀엽다는 말 한마디에 유진은 졸업 후 줄곧 검은 안경테를 고수했다. 콘택트렌즈 상담까지 받아놓고도 취소했다. 화면 너머 현진 선배의 숨소리가 ‘네가 변하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례 2. 민재, 31세, 개발자
민재는 ‘형’이라 부르는 33세 남자와 3년째 ‘할리스 채팅방’만 반복한다. 처음엔 오후 3시의 캐주얼 미팅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형은 민재의 옷차림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너 오늘도 그래? 응, 면티. 좋다, 그게 제일 실감 나.
민재의 옷장은 11벌의 똑같은 회색 면티로 가득하다. 한 벌이 바래면 같은 걸로 재구매. 형은 여태껏 민재의 실제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사진도, 영상 통화도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금요일 밤, 형은 민재의 목덜미를 상상하며 혼자 해결한다고 고백했다. 민재는 그 말을 스크린샷해 비밀 폴더에 간직했다.
왜 우리는 ‘안 변함’에 홀린 것일까
심리학자 브루마는 “금기는 욕망의 온도를 유지하는 최후의 방패”라 했다. 3년간 ‘안 꾸며본’ 온라인 사랑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라, 완벽한 통제다. 상대를 실제로 만나면 나도 모르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 차라리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을 고수함으로써 상대를 내 기억 속에 가두는 거다.
화면 너머 키스는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키스를 수천 번 뇌리로 복제한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의 온도, 냄새, 미세한 떨림까지. 그리고 그것이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가장 잔인하게 사랑한다.
마지막 질문
만약 그가 내일 갑자기 “만나자”고 한다면, 너는 여전히 그 체크남방을 입고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눈 감고 레드 립스틱 한 번 살짝 바를까. 그때 네 손이 떨리는 건, 설렘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