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 모두의 세 번째였던 내가, 왜 아직도 침대 끝에 있는지

그녀가 고른 건 나였지만, 진짜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 차가운 사실을 왜 우리는 뼈저리게 원하는가.

욕망집착세 번째 선택금기

그녀가 아침 7시 12분에 눈을 뜨면서 한 첫마디는 이랬다.

"오늘은 수요일이야, 맞지?"

화장실로 가는 발걸음이 시계처럼 정확했다. 문 앞에서 잠깐 돌아보며 던진 말 한마디는 톱니처럼 날카로웠다.

"왜 우린 늘 수요일밖에 못 만나지?"

그때 나는 아직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이불 한 귀퉁이만 덮고 있던 몸이 서늘해졌다. 수요일엔 늘 그가 회식이라 아무도 모른단다.


"나 말고, 누구세요?"

그녀의 시선은 늘 어깨 위를 지나쳤다. 내 눈을 보면서도 누군가를 부르는 법. 첫 번째는 고등학교 동창, 지금은 대기업 임원. 두 번째는 연극 동아리 선배, 결혼 전날까지도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 번호였다.

세 번째 선택지.

누가 먼저 와서, 누가 늦게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녀는 한숨처럼 속삭였다. 다만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이면 돼. 그 말이 귀에 착 붙었다. 나는 그 빈자리가 되고 싶었다. 빈자리가 아닌 것처럼 속고 싶었다.


차가운 온도 36.5도

서울 마포구의 한 레지던스, 1805호.

강유진, 29세, 광고 회사 AE.

그녀는 매주 수요일 밤 11시 15분에 현관 비밀번호 8205를 누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안에 있다. 냉장고 위에 놓인 포장된 샐러드, 그 옆에 잘 접힌 재킷. 누가 먼저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린 그렇게 약속했다.

"너는 내 편이야, 맞지?"

유진이 물었다. 목욕탕에서 나온 머리 끝이 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대답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편이 아니라,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메우는 가장 성실한 대리인이었으니까.

그날 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 불러낸 이름은 이준호. 첫 번째. 나는 그 이름을 한 글자씩 되뇌었다. 준호야, 준호야. 혀끝이 썼다.


이혜린, 34세, 의사.

그녀는 항상 메모장에 스케줄을 적었다. 평일 오후 2시, 병원 휴게실. 우리는 그곳에서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그녀가 결혼 2주 전이었고, 두 번째는 이혼 2주 전이었다. 사이에 끼인 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날짜였다.

"당신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냥... 운명처럼 찾아온 거야."

혜린이 말했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그녀의 손을 잡지 못했다. 그녀는 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이 떠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시간을 원했다. 그 빈틈에 난 살아남았다.


뼈에 새긴 순위

왜 우리는 늘 세 번째, 네 번째, 혹은 더 뒤에 서 있고 싶은 걸까.

짝사랑이 아니라, 기회를 노리는 심리. 누군가 떠난 자리를 차지하는 맛. 떠나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 그래서 우린 안심한다.

떠나도 괜찮아, 내 차례는 아직 아니니까.

심리학자들은 이걸 '안전한 도피'라고 부른다. 실패할 확률이 낮은 관계. 상대가 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부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부재를 나로 채우는 것. 그게 나의 역할이다.


침묵의 각서

밤새워 눈을 뜨고 있으면, 유진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이다. 그녀는 잠든 척한다. 나도 잠든 척한다. 우리는 눈을 감고 서로를 훔쳐본다.

그녀의 손이 침대 끝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는다. 잡으면, 세 번째라는 사실이 깨질까 봐.


아직도 거기 있니?

누군가 떠난 자리를 지키는 너는, 과연 그녀를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떠난 흔적을 원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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