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 48분, 사진 한 장에 손끝이 닿았다
휴대폰이 눈을 가렸다. 침대 머리맡에 뒷정강이를 붙이고 나는 다시 확인했다. 0시 48분, 인스타그램 ‘유진’의 프로필. 사진 하나. 가로로 잘린 머리카락, 조금 올라간 카라 가방끈, 팔뚝 안쪽의 반점까지 선명했다. 플래시가 턱선 끝에 남긴 흰빛은 마치 그녀가 막 숨을 내쉰 것처럼 살아 있었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 턱선을 따라갔다. 화면 위로 미끄러지는 손끝보다 더 뜨거운 건 상상이었다. 매일 밤, 그 턱선 너머 어디쯤에 숨겨진 목소리를 떠올리곤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사진은 한 장뿐이었고, 그 한 장으로 나는 충분했다.
1차 거짓말: ‘근처 산대문’이라고 말했을 때
첫 DM은 6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이었다. 2시 17분. 내가 먼저 보낸 말은 단순했다.
“사진, 진짜 잘 나왔어요.”
답은 3분 만에 왔다.
“ㅋㅋㅎ 감사요. 누구세요?”
‘부산’이라고 적고 싶었지만,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산대문 근처에 사는 사람이에요. 카페 자주 가요.”
거짓말이었다. 나는 부산 기장에서 자취 중이었고, 산대문은 지도상으로도 250킬로미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말했다.
“오, 나도 산대문 쪽! ‘믹스드플랜’ 가봤어?”
믹스드플랜. 검색해보니 서울 연남동의 작은 카페였다. 메뉴판 사진 속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 5,800원, 점원이 손글씨로 써 붙인 ‘오늘의 블루베리 케이크’까지. 나는 그날부터 카페 지도를 외웠다. 집 앞 바닷가 대신 연남동 골목길을 떠올렸다. 주차할 곳 없는 좁은 길, 대문에 붙은 플라스틱 포장마차 간판, 빨간 벽돌 틈새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까지.
2차 거짓말: ‘나도 디자인 전공’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비주얼디자인과 12학번이라고 했다. 나는 맞장구쳤다.
“나도 디자인 전공인데, 졸업은 13학번이에요.”
사실 내 전공은 화학공학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낸 수업 목록, 졸업 전시회 사진, 졸업생들의 단체 컷까지 나는 모두 저장했다. 그녀가 “교수님이 너무 엄하셨어”라고 하면, 나도 “우리도 그래서 밤새 작업했어”라고 받았다. 거짓말 속에서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공유했다. 새벽 두 시, 실내디자인실 노란 불빛, 모니터에 비친 눈밑 그림자까지.
3차 거짓말: 그녀가 사진을 한 장도 더 보내지 않았을 때
이상했다. 3주, 4주, 한 달. 그녀는 단 한 장도 새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DM으로도 안 보냈다. 물었을 때 그녀는 말했다.
“사진 찍는 게 싫어요. 카메라 앞에 서면 숨이 막혀.”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더 보고 싶었다. 0시 48분, 나는 사진 속 그녀의 턱선을 확대했다. 픽셀이 깨지기 시작했을 때 손가락을 떼었다. 픽셀 깨짐이 그녀의 숨결이라고 믿고 싶었다. 거짓말이야. 가슴 한쪽에서 속삭였다. 그래도 좋아. 다른 쪽이 맞받았다.
서진에게 들은 진짜 사실
회사 동호회에서 만난 서진은, 한때 ‘현수’라는 남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빠졌다고 했다. 프로필 사진은 배우 이민호를 닮은 외모, 대화는 기차 안내방송처럼 매끄러웠다. 서진은 전화를 받았다. 한 달 만에 현수는 사라졌다. 프로필이 흐릿해지고, 카카오톡은 차단됐다. 서진은 말했다.
“나도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도 받는 말 한마디마다 심장이 뛰었거든. ‘사랑해’라는 말이 진짜라고 믿고 싶었어.”
서진은 목끝을 가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같은 병에 걸려 있었다. 병명은 ‘확인할 수 없는 애정 망상증’.
7월 14일, 사진 속 그녀가 사라진 날
그날도 새벽 두 시, 나는 DM을 보냈다.
“오늘도 늦게까지 작업했어?”
회색 체크 표시만 돌아왔다. 읽지 않음. 그다음 날도 그랬다. 사흘째 되던 날, 프로필 사진이 아예 사라졌다. 계정 자체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사용자입니다’라는 문구가 까만 화면 위에 떴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준비된 결말이었다.
그래, 너는 없었어.
여전히 나는 그녀의 턱선을 따라간다
오늘도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켠다. 사진은 다시 찾을 수 없지만, 머릿속에 남은 턱선은 또렷하다. 손가락이 공기 위로 미끄러진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사랑한 건 네가 아니라, 너의 빈자리였구나.”
가짜 프로필, 거짓 이름, 없어진 사진. 그 모든 것이 흩어진 뒤에 남은 건 나의 욕망뿐이었다. 그 욕망은 아직도 사진 속 턱선을 따라 숨쉰다. 나는 아직도 그 숨결을 느낀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는 뒤틀린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로 돌아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