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당신도 나처럼 그를 구하다가 스스로 지옥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

10년째 엄마 손바닥 위에 놓인 남편을 구하겠다는 나의 허영. 그가 아니라 내가 먼저 죽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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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발가락 운동

아침 7시 30분, 거실 바닥에 깔린 요가매트 위로 빨간 양말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발가락부터 발목까지 일일이 구부리는 동작, 숨 쉬는 횟수까지 맞춰주는 그의 목소리.

민재야, 엄마가 그렇게 하래
무릎 좀 더 세워, 엄마 말 들었잖아
너 혼자 하면 다리 모양 이상해져

나는 싱크대에 물을 틀었다가 또 잠근다. 냄새나는 숨결이 코끝을 간질인다. 어젯밤 민재가 내 귀에 속삭였던 말이 귀전을 맴돈다.

이번엔 달라. 너만 있으면 엄마 말 안 들어

나는 10년째 같은 말을 듣는다. 이제는 민재가 아닌 내가 더 빨리 숨을 죽인다.


삼킨 스푼

우리 신혼집 화장실 변기 위 수납장에는 아직도 시어머니의 약통이 들어 있다. 민재가 두 달 전에 가져오라고 했다가, 결국 다시 놓았다. 짙은 갈색 병 안의 하얀 알약은 민재의 위산을 녹이고, 내 자존심을 녹인다.

혹시 오늘 약 안 챙겨가면 안 돼?
엄마가 아침에 꼭 챙겨줬거든, 습관이라서

나는 살짝 노란 물끼가 돈 스푼을 꺼내 시어머니의 약통에 넣었다가 다시 뺐다. 지금 당장 민재의 위를 태워버릴까 하는 충동이 치밀었다. 그러면 그는 내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구원자의 키스

결혼 3년 차, 시어머니가 갑자기 허리 디스크로 쓰러졌을 때였다. 민재는 밤새 병원을 오간다. 나는 집에서 민재의 속옷을 빨면서, 처음으로 이 생각을 꿈꿨다.

이번 기회다. 민재를 완전히 내 편으로

병실 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민재는 제가 책임질게요
엄마는 편히 쉬세요

시어머니는 내 손을 움켜쥐었다. 손등에 박힌 굳은살이 나의 허영을 긁었다.

우리 민재가 요즘 너무 하얘졌잖아
네가 잘 좀 먹여줘라

그날 이후 민재는 점점 하얘졌다. 내가 채운 접시를 받아들면서도, 눈동자는 어두워졌다.


두 번째 웨딩드레스

결혼 7년 차. 민재는 퇴사를 결심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카톡을 보낸다.

아들아, 오늘도 발가락 운동 잊지 마렴
엄마가 어젯밤 꿈에서 네 다리가 부러지는 거 봤어

나는 민재를 회사 앞 카페로 데려갔다.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될까?
나랑만 같이 살까?
우리 둘이서만 살아

민재는 잔뜩 찌그러진 종이컵을 말아쥐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우리 사이를 갈랐다.

은서야, 엄마 없이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엄마가 안 되면 나도 안 돼

나는 그날 밤 이혼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찢었다. 아니, 아직 민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영이 나를 붙잡았다.


어머니의 가죽끈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시어머니는 어깨에 핏줄이 터질 듯한 붉은 가죽 코트를 입고 우리 집에 왔다. 민재는 그 코트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드렸다. 나는 마치 애인을 위한 스트립쇼를 보는 듯한 불쾌감에 휩싸였다.

민재야, 엄마 목 좀 주물러줘
오늘 너무 추워서 혈액순환이 안 되네

민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어머니의 목덜미를 눌렀다. 그 자세이 마치 어린 시절 엄마의 젖을 찾던 아이 같았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민재를 구는 게 아니라, 민재가 나를 구하는 줄 알았다


허영의 보초

그날 밤 민재는 다시 말했다.

아무도 나를 구하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냥 나를 그대로 두면 안 될까

나는 이불 속에서 민재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아니 차가움이 아니라 온도가 없었다. 나는 그 손을 놓지 못했다. 놓으면 나도 사라질 것 같았다.


마지막 질문

당신도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허영으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운가요. 민재를 구는 대신 나는 민재의 엄마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밤마다 목끝을 조른다.

지금 이 순간, 민재는 다시 발가락 운동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그리고 나는, 그를 구하는 대신 나 자신을 구하려는지도 모른다.

그를 구하는 나의 욕망이, 사실은 나를 구하기 위한 가장 음흉한 방식이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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