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숨 좀 쉴게"
새벽 1시 47분. 지민은 아내의 코 끝에 걸린 숨소리를 가늠하며 천천히 침대에서 미끄러져 나왔. 발레리나처럼 발끝만 살며시 딛고, 도배지 하나 틀어 까는 소리도 낼까 두려워 숨을 삼켰다.
거실 조명 대신 냉장고 불빛 하나. 그 희미한 빛 속에서 지민은 소파에 누웠다. 텅 빈 거실이 그의 가슴을 뚫었다. 여기선 아무도 나를 품 안에 넣지 않아. 그래서 그는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숨을 크게, 더 크게 들이마셨다. 마치 20대 시절 하숙집 하찮은 침대처럼, 이 좁은 2인용 소파가 그의 전부였다.
한낮의 침묵보다 깊은 욕망
왜 결혼한 남자들은 아내가 잠든 뒤의 시간을 그토록 탐낼까.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너무 커서 숨이 막히는 것이다. 전부가 되어버린 관계는 더 이상 외부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감정, 시간, 심지어 숨조차도 연결된 두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잠든 아내의 쪽모양을 뒤로하고, 훔쳐오는 이 두 시간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 시간이어야 한다. 아무 의미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자유다. 누가 봐도 하찮은 TV 채널 돌리기, 반쯤 죽은 맥주 한 모금, 아무도 모르는 포르노 사이트 클릭. 이 모든 게 사실은 무의미해서 신성하다. 절대 평가받지 않아야 하는 자유.
상현의 이야기 - 옷장 속의 숨소리
상현은 결혼 3년 차, 아내 수진은 여전히 눈웃음이 예뻤다. 하지만 상현은 어느 순간부터 수진의 옆에서 잠들면 가슴이 죄어들었다. 아침이면 "밤에 나 무서워서 못 잤어?"라고 물으면, 그는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사실은 아니었다. 수진의 한쪽 팔이 항상 그의 가슴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 무게가 점점 무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상현은 아내가 잠든 뒤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살짝 열고,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좁고 냄새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수진의 숨소리도 온기도 닿지 않았다. 상현은 그 틈바구니에서 40분, 60분, 가끔은 새벽 3시까지 누워있었다. 스마트폰 불빛으로 뉴스를 읽고,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를 다시 찾아봤다. 여기선 난 그냥 12살 짜장면 좋아하던 아이다. 그 시간만큼은 남편이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지우의 이야기 - 베란다 위의 달빛
지우는 결혼 1년 만에 아내 유나에게서 베란다 열쇠를 몰래 복사했다. 유나는 베란다를 건조대로 썼지만, 지우는 그곳을 은밀한 통로로 만들었다. 밤 2시가 되면 베란다 문을 살살 열고, 서울의 불빛을 마주했다.
그곳에서 지우는 원래 자기였던 남자를 불러냈다. 술집에서 만났던 여자들에게 보냈던 뜨거운 메시지, 군대에서 같이 담배 피우던 형들에게 보낸 욕설 섞인 문자, 전 여자친구에게서 아직도 오는 생일 축하. 그 모든 것들이 아내의 영역에서는 금기였다. 하지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그는 그 금기를 한 모금씩 되살렸다. 이건 배신이 아니야, 그냥 내가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숨쉬는 거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정신분석학자 윈니콧이 말한 '은신처(transitional space)'는 이토록 사소한 공간이었다. 엄마 품과 외부 세계 사이의 틈바구니. 성인이 된 우리에게 그 공간은 아내의 품과 외부 세계 사이, 혹은 '우리'라는 단수와 '나'라는 단수 사이의 미세한 틈새로 변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두 사람을 하나로 융합하도록 압박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고립된 존재다. 우리는 누군가와 완전히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그 연결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이런 이중적 욕망은 치밀한 거짓말을 요구한다. "나 지금 화장실 좀 다녀올게"라는 말 속에는 "나 지금 혼자 숨 좀 쉴게"라는 진실이 숨어있다.
남자들이 신혼의 두 밤을 탐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시간은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의 눈길도, 회사 상사의 질책도, 친구들의 기대도 닿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너는 지금 어디서 숨을 쉬고 있니
그래서, 네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내, 남편, 연인, 혹은 그 누군가의 옆에 누워있다면. 너는 정말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걸까. 아니면 혼자 숨을 쉬기 위해 연기하는 걸까.
그리고 더 본질적인 질문. 만약 그 연기마저 없어진다면, 너는 여전히 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