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민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이가 단단한 살갗을 찌를 때마다 뜨거운 철맛이 퍼졌다. 혀끝으로 맛본 그 맛. 아직도, 아직도 끝내지 못한 관계의 맛.
- 야, 너 정말 이제 그만 끝낼 거지?
- ……음, 모르겠어.
현관문 앞에 선 두 사람. 아직 가방도 못 내려놓은 채 서로의 손등만 바라본다. 민서의 남편은 10초 뒤에도, 20초 뒤에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았다. 아내의 입술이 새빨개진 걸 봤으면서도.
피 맛 나는 키스
그날도 민서는 다혁과 만났다. 다혁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 남편의 대학 후배다. 동시에 지난 8개월 동안 민서의 혀를 가장 많이 핥은 사람이기도 하다.
지하 주차장의 차 안. 창문에 슬슬 안개가 낀다.
- 키스만 하자, 오늘은.
- 그럴까.
가슴팍이 닿을 듯 말 듯. 다혁은 민서의 아래 입술을 살살 씹었다. 민서는 눈을 감았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더라.
맛이 났다. 아니, 독이었다. 혀가 닳도록 키스하면서도 민서는 생각했다. ‘이제 끝내야 하는데’ 하고. 그러나 다음 키스는 더 깊었다. 독이 퍼질수록 아프면서도 달콤했다.
뒷맛이 짜증 나는 이유
3년 차 부부인 민서와 남편 사이에는 이미 짜증이 고착되어 있었다. 세면대에 묻은 칫물 자국, 냉장고에 넣어두면 3주 동안 그대로인 장조림, TV 리모컨이 늘 냉장고 위에 있다는 사실.
그 짜증은 서서히 맛이 변했다. 처음엔 시큼했는데, 지금은 쓴맛으로 굳어졌다. 민서는 남편을 보면 이가 쑤셨다. 아니, 실은 다혁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는 환희와 함께, 범죄의 뒷맛이 뒤엉켰다.
- 왜 매일 이렇게 야근이 많아?
- …그냥.
대답이 짧아질수록 민서는 다혁에게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남편이 몰라주는 사이, 민서는 혀끝으로 죄를 받아 적었다.
손톱 아래 박힌 붉은 자국
사례 1. 지은, 34세, 양평 전원 주택에 산다.
지은은 지난주 남편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 바람 폭로 문자다. 2년 전부터 이어진 외도를 고백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1년째 다른 사람과 잠들고 있었으니까.
남편이 울면서 빌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정원의 흙을 파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을 내고, 뜨거운 수건을 묻었다. 흙에 뜨거움이 스며들 때, 지은은 손톱 밑에 붉은 자국을 뚜렷이 느꼈다. 이게 우리의 끝이야. 그러나 아침이 되자 흙은 다시 덮였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셨다. 죄의 흙이 다시 잠들었다.
사례 2. 대현, 39세, 약혼 상태.
대현은 약혼녀에게 이미 2차례 바람을 들켰다. 두 번째 들킨 날, 약혼녀는 반지를 반납했다. 대현은 무릎을 꿇었다. 그녀와 헤어져야 마땅한데, 대현은 반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2개월째 소파 밑을 뒤진다. 결혼은 아직 미뤄졌다. 대현의 혀에는 그녀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다. 윤아, 윤아. 입 속에서 맴도는 이름은 죄의 핏물처럼 잘 씻기지 않는다.
죄를 씹는 즐거움
우리는 왜 끝내지 못할까. 아니, 끝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불륜은 결국 끝나야 할 관계의 연장선이다. 끝내지 못한 분노, 끝내지 못한 짜증, 끝내지 못한 욕망을 입 안에 가두어 두고, 씹고, 또 씹는다.
심리학자 브라운은 말한다. “인간은 끝나지 않은 갈등에 집착한다. 끝이 아닌 과정 자체를 즐기는 본능이 있다.” 즉, 끝내지 못하는 죄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연장 플레이인 셈이다.
민서의 입술이 또 터졌다. 다혁이 보낸 메시지다. “오늘도 만날까?” 민서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화면이 꺼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볼이 축 처진 여자. 그런데도 그녀는 답장을 썼다. “네. 오늘도.”
입 속에 남은 단맛
밤 11시 47분. 민서는 남편이 잠든 뒤 거실에 앉아 있다. TV는 꺼져 있고, 식탁 위에는 아침에 먹다 만 계란후라이가 있다. 그녀는 포크로 노른자를 찌른다. 흐르는 노른자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이제 정말 끝내야 하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포크를 놓지 않는다. 노른자를 계속 휘젓는다.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왜냐하면 끝내는 순간, 그 단맛도 사라질 테니까.
입안에 남은 그 맛, 그게 너의 것이긴 한가? 아니면 아직 너를 놓아주지 않은 다른 사람의 단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