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식이라 늦을게, 먼저 자." 아직도 냉장고에 붙은 그 종이가 눈에 밟힌다. 글씨는 연필로 휘갈겨 있었고, 끝에 콩글리쉬 식으로 찍은 하트 하나가 유일한 애정 표현이었다. 그날 나는 밤새 그 종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가 회식이라는 말로 덮은 밤을, 나는 언제쯤 간파했을까.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돌려줄 차례다.
그가 사라진 밤, 나는 무엇을 분노했는가
그가 안방 문을 닫고 나간 뒤, 나는 침대 끝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아니, 맥주를 마신 게 아니라 질투를 마셨다. 다른 여자 품에 안긴 남편의 머리카락 냄새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배신에 분노한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뻔했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다시 돌아온 남편? 아니면 그를 영원히 떠올릴 때마다 갈가리 찢기는 영혼에 대한 배상?
두 여자, 각자의 방식으로 되갚기
사례 1: 지은, 38세, 두 아이의 엄마
지은은 남편이 새벽 두 시에 들어온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증거였다. 6개월 뒤, 남편 앞에 내민 파일 두권. 하나는 그의 바람을 묘사한 날짜별 기록, 다른 하나는 바람을 이유로 계산한 재산 분할 시나리오였다.
"네가 떠난 날마다 나는 새벽마다 깼어. 그 시간 값으로만 해도 이 정도는 받아야 해."
남편의 눈이 흔들렸다. 지은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 끝에 비치는 게슴츠레한 그림자를 남편도 봤다. 결국 남편은 자발적으로 명의 이전 서류를 들고 나왔다. 지은은 그 서류를 받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사례 2: 세린, 35세, 결혼 7년 차
세린은 남편이 떠난 뒤 매일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을 빼기 위해서였지만, 점점 목적이 달라졌다. 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가 떠난 이유를 근육으로 새겼다. 3개월 만에 -12kg. 남편이 돌아왔을 때, 세린은 그에게 한 마디 했다.
"이제 나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겠지, 네가 그랬듯이."
남편의 표정이 굳었다. 세린은 이제 그가 느낄 죄책감의 무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무게만큼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세린은 남편이 잠든 사이 새로 산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현관문을 나섰다. 이제 네가 잠 못 이룰 차례야.
왜 우리는 상처로 보상을 원하는가
심리학자는 말한다. 배신은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 안전 기반의 붕괴라고. 우리가 원하는 보상은 돈도, 재산도, 육체적 복수도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 신뢰, 자존감을 되살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상대방에게 똑같은 크기의 공허를 선물하려 든다.
집착도, 애증도 아닌. 단지 공평함에 대한 갈망이다.
당신은 어떤 보상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아직 그 종이를 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남편에게 줄 보상의 형태를 고민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건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조각난 날들을 되돌려 달라는 황당한 요구일지.
당신은 지금, 어떤 보상을 상상하고 있나. 그리고 그 보상이 그를 움직일 만큼 무게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만의 환상 속에 갇힌 헛된 바람일까. 오늘 밤, 냉장고 문에 붙은 그 종이를 꼭 만져보길. 아직도 차가운가, 아니면 당신의 체온으로 녹아내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