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발
그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발가락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나는 그림자처럼 뒤를 밟으며, 대신 뱉은 건 한마디.
“그래, 네가 원하면 나가. 어차피… 너 없이도 잘 살아.”
실은 그 한마디에 숨겨진 말이 있었다. 그래도 돌아와야 해. 울면서라도.
잘린 손목처럼 남은 나의 욕망
헤어짐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끝이어야 했던 게 아니라, 그를 도륙할 수 있는 마지막 힘이었다.
‘이제 떠나면 넌 다시는 못 돌아와.’ 그 경고를 내가 아닌 그가 걸어야만 짜릿했다.
상처받은 척 연기하는 일에는 숨겨진 쾌감이 있다. 죄책감을 뒤집어씌우고, 눈물을 무기 삼아 상대의 발을 묶어두는 일. 그게 헤어짐의 진짜 권력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갈퀴.
실수라고 우겨도 떠났던, 지원의 이야기
지원은 결국 떠났다. 문 앞에서 40분을 버텼다.
“그냥 한 번만… 마지막으로 끌어안아줘.” 그 말 한마디에 지원은 이마를 내 어깨에 살짝 기댔다. 떨리는 숨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그걸 증거로 삼았다.
이 사람이 아직 나를 원한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이밀었다. “이렇게 떠나면 너만 나쁜 사람 돼. 인정하긴 싫지?” 지원은 눈을 감았다. 두 손이 허공에서 실룩였다.
그러나 10초 후 그는 뒤로 물러났다. 문을 닫으며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귓가를 때린다.
“그래,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차라리 나아.”
희생양이 되고 싶어 했던 나의 밤
다음 이야기는 수진의 것.
수진은 남편에게 *“나한테 못 미더워?”*라고 물었다. 남편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뜻하는 바를 수진은 너무 잘 알았다.
수진은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울었다. 하지만 눈물 속에선 또 다른 욕망이 꿈틀거렸다.
당신이 나를 버리면, 당신은 죄인이 돼. 그 죄를 가슴에 품고 살게 해줄게.
그날 밤, 수진은 결국 혼자 남았다. 그러나 새벽 3시,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삭제됨] 3:04AM — 사실 나도 너랑 끝내고 싶었어. 미안, 거짓말이었어.
약 30분 뒤, 수진의 전화는 울렸다. 남편이었다. 그때 알았다. 우리는 희생양이 되는 것으로 사랑의 끈을 되레 조여대고 있다는 걸.
금기의 달콤함, 왜 우리는 뒤틀린 끌림에 굴복하는가
심리학자 에스더 페렐은 말한다. ‘사랑의 위기는 결코 사랑의 부족에서 오지 않는다. 욕망의 불안정함에서 온다.’
나는 여기에 한 줄을 덧붙인다.
사랑이 죽었을 때, 남는 건 권력뿐이다.
우리는 상대를 떠나보낼 때, 아직도 상대의 손목에 우리의 상처를 족쇄처럼 채우고 싶어 한다. 미안함이라는 이름의 족쇄.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사슬.
그래서 떠나려는 발을 더 떨게 만든다.
닫히지 않는 문 앞에 남은 질문
문이 닫히고 나면, 한 가지 사실이 남는다.
네가 떠났다는 것과, 내가 널 아직도 품 안에 가두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과연… 정말로 떠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떠나면서도 돌아오길 애걸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