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면 할인해주나요?”
그가 문 앞에서 내뱉은 첫마디는 시시했다. 술 냄새 섞인 숨결이 투명 유리문에 하얗게 닿았다. 아내의 생일이 엿새 남은 2월, 영하 7도의 새벽 두 시. 주차장 불빛 아래 서 있던 건 평범한 중소기업 과장 ‘민석’이었다. 옆구리엔 대학 동창 ‘현수’가, 뒤편엔 민석의 반지가 차가운 손가락에 꽉 죄여 있었다. 반지 안쪽에 새겨진 날짜는 2022.02.28, 결혼식이 열린 지 730일이 지난 밤.
얼음장 속을 걷는 발걸음
그는 문을 두드리기 30분 전까지만 해도 처음엔 맥주 한 잔이었다고 둘러댔다. ‘그냥 말이야, 생일 케이크 미리 사러 가는 길에.’ 동네 평범한 포장마차에 앉아 현수와 둘이서 시켜 먹은 안주는 간장새우, 골뱅이 무침, 그리고 민석의 변명이었다. 술잔이 비워질수록 현수는 키득거렸다.
현수: 너 아직도 그거 못 봤어?
민석: 뭐?
현수: 아내 말고, 다른 여자. 결혼하고 한 번도?
민석은 대답 대신 입 안에 남은 골뱅이를 꿀꺽 삼켰다. 그것 자체가 답이었다. 현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레드카드’라는 앱, 익명 리뷰에 가격까지 적혀 있는 곳. 그가 찍은 지도 위엔 네온 빛으로 점멸하는 핀 5개가, 마치 동물의 눈처럼 반짝였다.
욕망의 해부
그들은 집을 나선 뒤 17분 만에 첫 건물 앞에 도착했다. 현관 비밀번호 1225. 크리스마스, 아니면 크리스마스 이브. 조명이 꺼진 계단을 올라가며 민석은 느꼈다. 이건 단순한 성욕이 아니야. 그걸 느낀 지점이 문제였다. 그날의 욕망은 누군가를 ‘속이는’ 맛, 아내의 눈을 속이는 촉각이었다. 성병 검사 결과를 안 묻는 순간, 그는 이미 그 맛을 혓바닥으로 굴렸다.
그녀는 ‘유리’였다
202호, 이름 ‘유리’. 그녀는 문 앞에 서자마자 민석의 반지를 봤다. 반짝이는 금속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한눈에 알아챘다.
유리: 초콜릿 드릴까요?
민석: …뭐?
유리: 초콜릿. 오늘 발렌타인이잖아.
대답은 없었다. 유리는 민석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눌러 내렸다. 그녀의 손끝은 17도 실내에도 불구하고 차가웠다. ‘차가우면 아내와는 다를 거야.’ 민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옷을 벗는 동안 현수는 1층 편의점에 가서 멸치라도 사러 갔다. 혼자 남겨진 순간, 민석은 복도 벽에 서서 ‘결혼 기념일’을 더듬거렸다.
반지의 잠식
35분 뒤, 민석은 욕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유리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나가버렸다. 물이 뜨거워서 안색이 붉어졌다. 거울 속 남자는 낯설었다. 이게 뭐지. 반지는 손가락에 그대로 있었지만, 그 반지가 상징하던 ‘신뢰’의 가치는 3분 만에 증발했다. 민석은 멍하니 반지를 돌렸다. 속삭임이 들렸다.
나는 왜 굳이 아내 몰래 해야 했을까? 공개적으로 해도 아무도 몰랐을 텐데, 왜 숨겨야 짜릿했을까?
사례 두 번째: ‘수진’의 남편
같은 달, 21일 뒤. ‘수진’(가명)은 결혼 2년 차 남편 ‘도현’의 휴대폰에서 결제 내역을 발견했다. 장소는 모텔, 시간은 새벽 1시 42분, 금액 18만 원. 수진은 그 액수만 보고도 알았다. ‘그 정도면 둘이서 갔겠지.’ 그녀는 카드 승인 번호를 적어두고, 당일 남편을 기다렸다. 새벽 네 시, 도현은 그대로 잠들었다. 수진은 남편의 목덜미에 숨을 뿜으며 물었다.
수진: 거기, 얼마 줬어?
도현: …뭐?
수진: 몇 만 원인지 물은 거야.
도현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수진은 뒷정리를 떠올렸다. 지갑에서 콘돔 꺼내는 냄새. 그날 이후, 수진은 남편의 지갑에서 항상 5만 원씩 빼놓았다. ‘그 돈은 내 몫’이라는 명목이었다. 실제론 그녀도 모르는 곳에 썼다. 보복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내가도 똑같이 하면 어떻게 될까.
금기의 달콤한 맛
결국 둘 다 속았다. 민석은 아내 몰래, 수진은 남편 몰래. 하지만 정작 둘 다 원했던 건 ‘들키지 않음’이었다. 들키지 않는 한에서, 그들은 평생 ‘숨겨진 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핵심이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오만. 결혼이 가르쳐준 첫 번째 거짓말은 ‘서로 모든 걸 공유한다’는 말이었다.
마지막 질문
민석은 새벽 4시 12분, 집 현관 앞에 섰다. 문 앞에서 신발을 벗으며 반지를 다시 돌렸다. 반지 안쪽엔 아직도 아내와의 결혼 날짜가 선명했다. 그가 문을 열기 직전 떠올린 건, 아내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었다. 내가 아내의 눈에서 나를 숨길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 당신의 반지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