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냄새가 남아 있는 손이 내 가슴 위에 닿았을 때, 아직 실습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검은 장갑이 떨어져 나간 손가락은 차갑고 뜨거웠다. 민석이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앉았다. 시계는 9시 47분, 캐리어 바퀴 소리만 길게 메아리쳤다.
“여기, 아직 뛰고 있네.”
손끝이 흉곽 아래를 스쳤다.
“벽보다 빠르다.”
나는 웃었다. 웃어야 했다. 민석의 눈빛은 심장을 향해 있었고, 내 얼굴은 그 눈빛 너머에 있었다. 그날 실습용 돼지 심장은 두 시간 전에 이미 식어버렸다. 민석은 식은 심장을 내려놓고, 나를 따로 남겼다.
그는 스테스코프를 꺼내 내 가슴에 얹었다. 최면이라도 걸 듯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듣는 게 더 잘 들려야 해.”
“뭐가?”
“숨이 멎을 때까지 뛰는 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복도 조명이 꺼져가는 게 보였다. 민석의 손가락은 청진기를 거치지 않고 직접 피부를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맥박이 손끝으로 옮겨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게 네 시간표야?”
“응?”
“심장이 뛰는 박자. 88 BPM. 너보다 난다.”
나는 그 말 속에 스며든 숫자를 떠올렸다. 88, 88, 88. 그날 이후로 나는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그 숫자를 세었다. 민석은 내 가슴을 만질 때마다 시험지에 그 숫자를 적어줬다. 그것만으로도 합격이었다.
12월 3일, 실습실 난방이 고장 났다. 유리창에 서리가 껴 있었다. 민석은 장갑을 벗고 주머니에 착 달라붙은 손을 꺼냈다. 그 손이 내 목덜미를 스쳤다. 차가움이 가슴으로 흘렀다.
“추워서 심장이 더 빨리 뛴다.”
“그래?”
“그래서 오늘은 다른 걸 해볼까.”
그는 내 손목을 잡았다. 손끝이 맥박 위를 맴돌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민석의 눈빛이었다. 살아 있는 기관을 들여다보는 눈, 그러나 그 안에 나 자신은 없었다. 나는 그 눈빛 속에 비친 내 심장만 남았다. 민석이 말했다.
“혈액이 뛰는 방향이 반대로 가는 순간이 있을까?”
“그런 건 없잖아.”
“나는 있어.”
그는 내 가슴을 살짝 눌렀다. 심장이 잠깐 멈추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이 내 눈을 마주쳤다. 단 한 번, 그가 나를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눈이 흐릿해졌다.
“아, 이미 다 왔네.”
그는 손을 떼고 일어났다. 실습실 불이 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나는 혼자 남아 심장을 만졌다. 88, 88, 88. 숫자는 여전히 뛰고 있었다. 민석이 남긴 숫자, 민석이 떠난 뒤에도 나를 지켰다.
설날, 병원 축제가 열렸다. 민석은 의대 앞 카니발 부스에서 혈액형 봉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지나쳤다. 그는 나를 보았지만, 눈길은 곧 내 가슴으로 향했다. 나는 그 시선을 느꼈다. 심장이 뛰는 곳을 향해 내려앉는 시선.
나는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민석의 손길이 다시 내 가슴을 만질 일은 없었다. 그러나 숫자 88은 아직도 뛰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다 멈췄다. 심장이 내 이름 대신 민석의 숫자를 부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한 명의 이름만 들썩이게 했다. 민석, 민석, 민석.
졸업식 날, 실습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봤다. 빈 테이블 위에 스테스코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굳게 잠긴 문이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아직 뛰고 있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민석이 서 있었다. 손에는 새 검은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그는 내 가슴을 가리켰다. 맥박이 다시 88 BPM로 올라갔다. 민석이 말했다.
“이제는 들을 필요 없어.”
“그럼?”
“네가 뛰는 소리, 그걸로 충분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 내 심장이 뛰는 소리,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실습실 불이 꺼져도, 우리는 둘만의 시간표를 따라 뛰었다. 88, 88, 88. 민석의 손이 내 심장 위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