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오는 거야?”
전화 너먌 그녀의 숨소리가 달아올랐다. 새벽 1시 47분, 집 앞 편의점 불빛이 축축한 아스팔트를 적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손에 쥔 휴대폰에 켜진 화면이 두 손을 떨렸다.
‘저 사람 아직 진도 못 뺀 거야?’
그 한 줄은 16년 만에 처음 본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뒷좌석에 숨겨둔 이름
우리는 2007년 학교 뒷산에서 첫 키스를 했다. 당시엔 두 손에도 잡히지 않던 미래가, 지금은 냉장고 문고리처럼 익숙해졌다. 네 살 연하의 그녀가 내게 남긴 첫 메모는 “밥 먹자”였고, 마지막 메모는 그랬다.
나는 그녀의 전화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검은색 케이스가 닳도록 쥐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새벽에 울린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고, 잠긴 화면 위로 떠오른 알림이 있었다.
‘저 사람 아직 진도 못 뺀 거야?’
발신자 이름은 ‘상준’이었다. 나는 상준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복도 끝 입맞춤
그녀는 나에게 어떤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을까.
나는 서랍 깊숙이 꽁꽁 숨겨둔 손전등으로 휴대폰을 비웠다. 비밀번호는 우리의 첫 데이트 기념일이었다. 0815. 여전히 통했다. 그러나 해금된 순간, 나는 이미 남의 남자였다는 걸 알았다.
카카오톡 상단에 떠 있던 대화방 이름.
‘오빠(❤)’
나는 절대 ‘오빠’라는 호칭을 듣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늘 ‘재혁아’라고 불렀다. 부모님 앞에서도, 눈 맞은 친구들 앞에서도. ‘오빠’는 나를 향한 적 없는 발음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찢겼다.
채팅방을 열었다.
오빠(❤) 오늘은 어디서?
그녀 그냥... 집.
오빠(❤) ㅎㅎ 나도 몰래 몰래?
그녀 시끄러.
오빠(❤) 진도는?
그녀 조금만 더 기다려.
마지막 메시지는 4시간 전이었다. 그녀가 내 품에 안긴 지 6시간 만에 본 대화였다.
익숙한 침대 위의 낯선 냄새
나는 그날 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근처 모텔 방을 잡았다. 16년 동안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한 장씩 뒤적였다. 2011년 부산 여행, 2014년 졸업식, 2017년 제주도에서의 프러포즈. 그 모든 사진 속 그녀의 눈빛이 사실은 다른 곳을 본다는 걸 깨닫는 데는 3시간이면 충분했다.
새벽 4시 12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혁아, 어디야?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알았다는 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상준’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게 더 서글펐다.
2007년의 우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상준은 그녀의 직장 동료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매일 밤 그녀가 퇴근하는 시간을 체크했다. ‘퇴근’이라는 단어는 이미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서는 7시 11분. 그녀가 지하철을 타는 7시 24분. 그녀가 ‘상준’을 만나는 7시 47분.
나는 그녀의 뒤를 밟지 않았다. 단지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녀가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며, 내가 아닌 남자에게 웃는 그녀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그 상상은 16년의 기억을 관통했다. 첫 키스의 순간, 첫 번째 다툼, 첫 번째 화해. 모든 장면이 ‘상준 없음’으로 필터링된 거대한 거짓말로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던 것의 끝
심리학자들은 장기 연애에서의 배신을 ‘관성적 욕망’이라 부른다. 익숙함에 길들여진 몸이 새로운 자극을 찾는 본능. 그러나 나는 그 설명이 너무 담담했다. 우리 사이에선 새로운 피부의 온도가 아니라, 버려진 16년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그녀는 결국 인정했다. 6개월. 상준과의 관계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은 내 전부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아닌 이름으로 불린 적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굴복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
만약 그날 밤 휴게실에서 메모를 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어땠을까.
나는 아직 답을 못 찾았다. 아니,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날 밤에 죽었고, 나는 16년 뒤에야 시신을 확인한 것뿐이다.
당신이라면 그 메모를 봤더라도 모른 척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새벽 2시, 편의점 불빛 아래서 맥주 캔을 부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