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조명만 남은 5시 47분
눈을 떴을 때 침대는 이미 식어 있었다. 흐릿한 새벽빛 사이로 그녀의 향기만 아련하게 흩날렸다. 휴대폰 화면이 켜지며 새벽 5시 47분. 손가락이 제멋대로 카톡을 열었다. 상단에 초록불 하나. 방금 전 수신된 메시지.
잘 잤어?
괜찮냐
두 줄. 그리고 ‘1’이 읽씹으로 바뀌었다.
괜찮냐? 왜 괜찮지 않을까.
욕망이 식는 순간의 온도
괜찮냐는 단어는 겉보기에 다정하지만, 속뜻은 간단하다. ‘어제 일은 오늘 아침에도 그대로 두지 마’라는 냉정한 경고. 한낮의 키스보다 새벽의 떨림이 더 뜨거웠던 이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서로의 숨결에 숨어 있던 이건 끝자락이야라는 말을.
한잔의 술을 핑계 삼아 닿았던 손끝, 그 손끝이 이제는 ‘괜찮냐’라는 세 글자로 다시 우리 사이를 가른다. 어제 밤 끌어안았던 몸의 체온은 36.7도였지만, 지금 이 문자의 온도는 3.7도쯤 느껴진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도현과 유진
도현은 우연히 아는 모임에서 만난 유진과 마지막 열차를 놓쳤다. 유진은 키가 크고 목소리가 낮아서, 첫눈에 이 사람은 나를 지배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새벽 세 시, 유진 아파트 거실 소파에 같이 앉아 있었다. 시원한 맥주 캔이 뺨을 간질일 때, 유진이 불쑥 물었다.
너도 지금 이 순간이 두려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 뒤에는 이미 끝내기로 작정한 욕망이 서 있었다. 그날 밤 침대 위에서 유진은 도현의 손목을 붙잡으며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 아침 6시 14분, 도현이 눈을 떴을 땐 베갯잇에 남긴 한 줄이 남았다.
나는 괜찮아. 너도 괜찮길.
실제 같은 이야기 2: 지아와 민수
지아는 결혼 약속이 있는 민수와 클럽에서 다시 마주쳤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 민수는 여전히 지아 눈매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꼬리를 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새벽 두 시, 민수가 지아의 손목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아닌 것처럼 해.
그 말 한마디에 지아는 마음이 뒤틀렸다. 민수는 아침 일곱 시, 지아가 잠든 틈을 타 나갔다. 카운터 위 포스트잇 한 장.
나중에 술 마시자. 오늘만큼은 괜찮았어.
‘괜찮았어’가 아니라 ‘괜찮아’였다면, 지아는 민수에게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형은 이미 끝난 사실을 인정하는 가장 차가운 시제다.
왜 우리는 결말을 미리 알면서도 뛰어드는가
괜찮냐는 메시지는 사실 *우리 끝났지?*라는 확인서다. 하지만 인간은 확인서를 받기 전까진 끝났다고 믿지 않으려 든다. 그래서 일부러 최후의 순간까지 술을 마신다. 술은 책임을 흐리는 가장 착한 미끼니까.
신경학자들은 말한다. 일회성 관계의 뇌파는 열도(엔도르핀+도파민)가 폭발하지만, 그다음 날 바로 쇠퇴한다. 아침에 오는 메시지 하나가 그 붕괴를 가속한다. 괜찮냐는 본래 ***당신은 아직 붕괴하지 않겠지?*라는 관음적 질문**이다.
방 안에 남은 질문
이불 속에서 다시 한 번 휴대폰을 켠다. ‘괜찮냐’는 여전히 1이 읽씹 상태다.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온다.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진짜 원하는 게 그녀의 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서 ‘괜찮지 않다’는 대답을 끌어내는 일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