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나는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준이의 운동화 끈을 보며, 나는 입에서 처음으로 그 단어를 씹었다. 떨리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짝 목뒤가 간질거릴 뿐이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지 겨우 네 시간 만이었다.
직장 동료들이 보낸 카톡이 계속 울렸다.
‘아니 회사에서 현준이를? 진짜? 어휴……’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고, 나는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 채 현관에 서 있는 남편을 올려다봤다. 스물다섯부터 알던, 스물아홉에 내가 웃으며 ‘평생 직장’이라고 놀렸던 그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입 속에선 쉬지 않고 더러운 말들이 부풀어 올랐다.
걔는 왜 지금도 눈치만 보지?
욕설 한 마디가 드러낸 진짜 감정
그날 나는 깨달았다. 욕설은 분노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갈증이었다. 집안일에 늘 뒷전이던 그가 갑자기 하던 대로 ‘회사 때문에’를 핑계 삼아 또 먼저 잠들 거라는 걸 알았고, 나는 그 빈곤한 핑계마저 질렸다.
아니, 사실은.
나는 그가 더 이상 강하지 않기를 바랐다.
연봉 더 많이 받는다고 늘 배의 절반만 닦는 식탁 위를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이제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약해진다는 사실이, 나는 처음으로 그를 아래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 가슴 한구석에서 묘하게 뜨거웠다. 비참함 따위를, 남편이라는 이름이 가진 권위를, 한 방에 끓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수진의 이야기: 끝내지 못한 욕설
"처음엔 참았죠. 다리에 철심 박고 일주일 누워 있던 날도."
수진, 34세, 그녀는 작년 음주운전 사고로 남편이 실직할 때를 회상했다. 카페 테라스 모서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잘게 웃었다.
시어머니는 매일 병문안 와서 눈물 짓고
나는 침대 옆에서 그 눈물 속에서
‘이 새끼가 죽었으면’이라고 중얼거렸죠.
사고 난 지 석 달째, 그녀는 아직도 남편에게 말 한 마디 거칠게 한 적 없다. 대신 밤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씨X"을 연습한다. 욕설은 뱉지 못했지만, 그 욕망은 뼈속까지 새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다시 걷게 됐을 때, 그가 무너진 것 같아 안쓰럽다고 느꼈다는 수진의 눈은 흐릿했다.
미안함과 해방감 사이를, 그녀는 아직도 오간다.
유라의 이야기: 욕설을 외치고 나서
"결국 한 말이에요. ‘너 때문에 나도 망했다’고."
유라, 31세, 한달 전 그녀는 남편의 벤처 사업 부도 소식과 함께 자신의 결혼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마포구 오피스텔 베란다에서,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쓰레기’라고 소리쳤다.
그날 이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서로를 ‘이 새끼’라 부르며
침대 위에서 섹스만 계속했죠.
사실은. 그 욕설이 터진 순간, 그녀는 남편이 아니라 8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자신에게 화를 냈던 거였다. 그 남편이 아니라, 나를 믿었던 나에게.
금기의 달콤함
우리는 왜 그렇게 남편에게 상처 주고 싶어질까. 그건 결국 돌아올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욕설 한 마디가 남긴 상처는 치료가 아니라 증거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됐다는, 감정의 대차대조표에 새겨진 마침표.
그러니까. 욕설은 지독한 사랑의 반대말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너를 지켜준다는 뜻이야. 욕설할 때, 나는 너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이지."
마지막 질문
당신은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면 욕설이 터져버릴 그날을? 문 앞 서 있는 남편에게, 혹은 침대 끝에 앉아 담배만 피우는 아내에게, 당신은 어느 쪽의 입을 열 준비가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