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요, 아니... 저기가 아니라 여기" 그날도 그는 또 틀렸다. 내 왼쪽 중지를 따라 떨리던 그의 손가락은, 내가 속삭인 대로가 아닌 다시 그가 익숙해진 곳으로 향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아직 몰랐다는 것. 그래서 나를 더 찾아야 한다는 것.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그를 놓치는 방식이었다.
왜 나는 그가 몰랐기를 바랐는가
그가 내 몸의 지도를 그리지 못할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시 발견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우연히 닿은 곳마다, 나는 숨겨두었던 욕망의 좌표를 다시 확인했다. 그는 단순히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르는 척했고, 나는 그 모르는 척을 은밀히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몸의 지리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영원히 길을 잃기를 바랐다. 교육은 유혹의 가장 정숙한 형태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는 법을 가르치며, 동시에 그가 다가오지 못하게 복잡한 미로를 만들었다.
실제처럼 들리는 두 개의 이야기
유리의 수업
유리는 32세의 피아노 교사였다. 그녀의 학생 준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결코 제대로 된 코드를 잡지 못했다. 어느 날, 유리는 준호의 손등 위로 천천히 자신의 손가락을 얹었다.
여기가 아니야, 여기.
준호의 손가락이 틀린 위치를 찾았을 때, 유리는 그의 손목을 살짝 잡아 제 위치로 안내했다. 그 순간, 유리는 준호의 숨결이 자신의 손등 위로 뜨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음악 레슨이 아니었다. 그녀는 준호에게 음악의 구조를 가르치며, 동시에 그가 그녀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었다.
준호는 결코 완벽한 코드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유리의 손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숨을 죽이는지를 완벽하게 배웠다. 마지막 수업 날, 준호는 유리에게 건넸다.
선생님, 그날 가르쳐주신 곳이 어디였는지 아직도 못 찾았어요.
유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가르치고 있잖아.
민재의 실수
민재는 사내 강사였다. 그는 어느 날, 신입 직원 수진에게 업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수진은 키보드 단축키를 익히지 못해 늘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민재는 수진의 손가락이 틀린 키를 누를 때마다 그녀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가락을 얹었다.
여기요, 이 키를 눌러야 해.
수진은 얼굴이 붉어지며 민재의 손가락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민재는 계속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는 수진이 틀린 키를 누를 때마다, 그녀의 손가락을 제대로 된 위치로 안내했다. 수진은 점점 더 민재의 손가락을 찾게 되었다. 어느 날, 수진은 민재에게 물었다.
선배, 왜 제가 틀리면 그렇게... 직접 잡으시는 거예요?
민재는 대답했다.
네가 틀리면, 내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우리는 왜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가르치고 싶어질까. 단순한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통해 서로를 더 찾아가고 싶어서는 아닐까.
지식과 욕망의 불가능한 교차점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들이 우리의 지식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지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가르침은 완벽한 전달이 아니라, 불완전한 이해를 통한 욕망의 연속이다.
그가 내 손가락 위치를 몰랐을 때, 나는 그를 더 깊이 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가르침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욕망의 지속이었다.
그대, 내 손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대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정확히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헤매고 있을까. 나는 그대가 내 몸의 지도를 완전히 그리지 못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계속해서 내 몸의 새로운 좌표를 알려줄 수 있도록.
단순한 위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찾지 못하는 나를 찾고 싶은 그대의 욕망을 찾고 싶다. 그게 바로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