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402호,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
"아무도 몰랐어요."
나연은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시은이 먼저 들어가고, 나연은 복도를 한 번 훑어본 뒤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카드키를 꽂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문이 닫히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우리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시은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나연도 따라 웃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이 방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이미 하나의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누가 더 더러운지를 두고
이 나라에선 결혼 전 몸 섞는 걸 "썩은 과일"이라 부른다. 시은의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한 입만 먹어도 온 바구니가 상하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썩은 과일을 먹고 싶어질까?
"우리가 더러운 건가, 아니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더러운 건가?"
나연은 시은에게 물었다. 시은은 대답 대신 나연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 위로 퍼지는 맥박이 너무 빨랐다. 감옥에 갇힌 죄수의 맥박처럼.
준혁과 민서, 6개월 전
준혁은 처음으로 민서의 집에 갔을 때, 그녀 아버지가 거실에 앉아 있는 걸 봤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그는 준혁에게 단 한 마디만 했다.
"우리 민서는 결혼 전까지는 순수해야 해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3시간 뒤, 민서와 함께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민서는 몸을 웅크렸다.
"여기서 하면... 진짜 죄인 되는 거잖아."
준혁은 민서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이미 됐어."
씨앗의 역설
이 나라 사람들은 결혼 전 순수를 지키라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남자들은 "경험 많은 여자"를 원한다. 그리고 여자들은 "경험 없는 남자"를 원한다.
그러면 누가 누구랑 경험해야 하는 거지?
금기의 본질은 금지가 아니라 금지의 가치다. 금기를 지킬수록, 그 금기를 깨는 순간의 쾌감은 배로 커진다. 우리는 금기를 지키면서 동시에 그 금기를 깨고 싶어 한다.
아직도 문 앞에서
나연과 시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2시간 동안 서로의 손만 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안 한 게 더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우리... 왜 안 했어?"
"했으면 어땠을까?"
"몰라. 후회했을지도."
"안 했는데도 후회 중이야."
더 깊은 욕망
우리가 원하는 건 섹스 자체가 아니었다. 범죄자가 되는 순간을 원했던 거다. 유리창 너머로 보는 금지된 열매를 원했던 거다. 그리고 그 열매를 따면서도 "나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중적인 자아를 원했다.
이 나라에서 결혼 전 몸 섞는 건 금기가 아니다. 금기를 지키는 척하며 금기를 범하는 것이 진짜 금기다.
문을 나서며
나연이 시은의 손을 놓았다.
"우리가 지금 나가면 어떻게 돼?"
"그냥 두 철부지 소녀로 남겠지."
"그럼 안 나가면?"
"범죄자가 되겠지."
"둘 중에 뭘로 살고 싶어?"
나연은 대답 대신 문을 열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나연은 깨달았다.
진짜 금기는 결혼 전 몸 섞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범죄자로 살아가는 게 싫어서, 아무 일도 없는 척 살아가는 거였다.
마지막 질문
당신은 어젯밤, 누구에게 "순수하다"는 말을 들었나? 그리고 그 순수함이 진짜 순수였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