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침대 위에서 우리는 이미 남남이 되어 있었다

연애 2년 차, 침대 안에서조차 서로의 몸을 찾지 않는 커플들의 냉랭한 침묵과 그 이면의 욕망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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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침대에 누워있던 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벌써 오래. 목에 바르는 크림 냄새가 침대 한가득 퍼질 때,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손끝이 살짝 닿는가 싶더니, 그녀는 네일 클립을 꺼내 손톱 정리에 몰두했다. 그건 이제 익숙한 신호였다. 오늘도, 아니 오래 전부터, 우리는 침대 위에서 남남이었다.


체온이 식은 밤

연애 2년 차, 우리의 언어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엔 숨죽여 웃으며 "씻고 올게"라고 속삭였던 입이, 이제는 "조명 좀 꺼줘"라는 실용적 문장만 내뱉는다. 그녀가 속옷 바꿀 때 나는 못 본 척, 나가 떨어진 양말 주우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우리는 서로의 몸이 아닌, 면적 4.5평 침실의 동거인처럼 움직인다.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욕망이 상대를 향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서 몰래 휴대폰을 켜듯 그녀의 허리를 스쳤고,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그건 어색함이 아니었다. 우리의 금기가 만들어낸 침묵이었다.


지하철 2호선에서 온 여자

'지혜'는 31살, 결혼 2년 차 주부다. 그녀는 남펴대신 침실 문 앞에 두고 간 쿠션을 먼저 안는다. 남편이 열일곱 살 연상인 회사원 '준석'은 대부분 새벽 2시 이후에 들어온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남편의 손이 자신의 속옷 안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지만, 시늉만 낸다. 눈 감은 채 숨죽이며 생각한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합적 의무다.'

"나는 그의 손길이 싫지 않아요. 싫은 건, 그 손길이 나를 어떤 여자로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는 그냥 '아내'라는 제도로 날 만지는 거죠."

그녀는 새벽 4시, 남편이 곤히 잠든 틈을 타 거실로 나간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손을 움직인다. 그녀만의 자극은 이제 남펵이 아닌, 남펵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다.


우리가 버린 것

우리는 왜 침대에서조차 남이 되었을까. 결혼이라는 제도는 서로를 보호해준다고 했지만, 욕망을 방어하는 거대한 방패가 되었다.

  • 원초적 욕망 : 처음엔 서로의 냄새가 취향이 아니었다. 그건 불안했다. 하지만 결혼 후, 냄새는 일상이 되었고, 불안은 사라졌다. 사라진 대신에, 흥분도 사라졌다.
  • 금기의 효용 : 우리는 더이상 상대의 몸을 위한 애정 어린 시선을 퍼붓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예의'를 지킨다. 서로의 자위행위를 몰래 하며, 그게 더 섹시하다고 느낀다.
  • 욕망의 재편 : 이제 우리의 몸은 제도 속에서 재편되었다. 남펵의 손은 아내를 위한 게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여성을 위한 손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침대 밑에 숨겨진 욕망

우리는 침대 밑에 작은 서랍을 뒀다. 안에는 각자의 비밀이 담겨있다. 나는 그녀가 사용하던 진동기를, 그녀는 내가 휴대폰에 저장한 포르노 클립들을 봤을 때 우리는 서로를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랍을 닫았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서로의 금기를 지키는 일이었다.

혹시 우리는 이 금기 속에서 더 깊은 욕망을 키우고 있는 걸까. 침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지만, 침대 밑에서 우리는 서로의 금단의 허기를 채운다. 그 허기는 더 화끈하고, 더 음침하고, 더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마지막 질문

오늘 밤, 당신은 침대에 누워 상대의 몸을 만지려 손을 뻗을 때, 정말 그 사람을 만지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저 '관계'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을 만져야만 하는 욕망에 지배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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