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민초 오레오지?”
잠긴 방문 뒤, 유나는 처음 맛보는 단맛을 혀끝에 올려놓았다. 민지의 서랍 안쪽, 뽀송한 종이 박스. 가격표를 끌어다 붙인 흔적이 아직 매끈했다. 한 입. 마치 그녀의 손끝이 아닌 다른 이의 살결처럼 낯선 촉감.
달콤한 위선
사실 유나는 몰랐다. ‘나도 살 수 있어’라는 변명이 얼마나 허술한지. 편의점 2층 진열대, 한 발짝만 가면 편히 살 수 있는 물건을 굳이 민지의 것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민지의 입술이 닿을 것을 예상하며 샀을 테니까.
‘맛있겠다’는 게 아니야. ‘그녀가 맛있게 먹을 것’을 내가 먼저 가져버리고 싶은 거야.
베어 무는 과정마다 ‘민지가 모를까’라는 불안이 뒤척였다. 그러나 불안은 곧 전율이 되더니, 결국 환희로 바뀌었다. 숨겨야 할 만큼 단맛이면, 그건 이미 선을 넘은 쾌락이다.
2층, 민지의 방
민지는 딸기맛 롤리팝을 좋아했다. 주말마다 펜트하우스 옥상에서 사진을 찍는 26세, 광고 스튜디오 조명팀. 돌아올 때마다 검은 비닐 봉지에 잔뜩 담긴 사탕을 들고 왔다. 봉지 위에 새겨진 레터링은 ‘당신은 특별합니다’였다.
유나는 그걸 봤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그녀가 먹을 사탕을, 유나는 매일 한 알씩 훔쳤다. 초록색, 분홍색, 하늘색. 알록달록한 색을 한 꺼풀씩 벗겨가며 민지의 하루를 미리 맛보는 기쁨. 오늘 저녁, 너는 이 맛을 기억할까? 아니면 그냥 사라진 줄만 알까?
한 달째 되던 날, 민지가 물었다.
너 내 롤리팝 봤어? …어제부터 안 보이더라.
유나는 흔들리는 시선을 꾹 눌러 담았다.
나도 모르겠네. 누가 먹었나 봐.
거짓말은 단맛보다 달콤했다.
세 번째 사례: 지하 창고
경남 부산, 2021년. 대학가 원룸촌 지하 창고. ‘수진’이라는 여자는 룸메이트 ‘혜원’의 아포시딜 초콜릿을 빼돌렸다. 훔친 게 초콜릿만은 아니었다. 혜원이 남자친구에게 받았다는, 포장 위 ‘사랑해’ 스티커가 붙은 초콜릿. 수진은 노란 리본을 뜯고, 남은 초콜릿을 다시 포장했다. 그리고 스티커를 뒷면에 폈지만, ‘사랑해’ 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달콤한 잉크가 남긴 흔적마저 훔치고 싶었다.
수진은 혜원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디 갔지?”라는 의문에, “몰라, 내가 먹은 건 아니야”라는 답이 돌아올 때마다 전기가 왔다. 혜원이 미심쩍어 눈살을 찌푸릴수록, 수진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그 불편함, 나도 나눠 갖고 싶었어.
나는 왜 네 것을 원하는가
심리학자 융은 ‘그림자’라 불렀다. 타인의 것을 탐내는 욕망은 사실 내가 갖고 싶지만 품을 수 없었던 자아의 일부를 투영하는 것. 민지의 과자는 ‘나도 특별해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었다. 혜원의 초콜릿은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열망이었다.
금기의 맛은 단맛을 넘어선다.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의 삶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겹쳐입는 것. 그들이 먹을 것, 그들이 느낄 감정을 미리 훔쳐버리는 찰나. 그 탈취는 집착이지, 단순한 약탈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뺏고 싶은가
밤마다 서랍을 열어본다. 누구의 것이든 좋다. 내 것은 아닌 것. 그 순간 당신은 어떤 맛을 상상하는가. 그리고 그 맛 뒤에 숨겨진 당신의 욕망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유나가 한 말을 되새겨본다. “그래, 나도 이제 민초 오레오는 사지 않을래. 내가 먹는 것보다 더 달콤한 게 있거든.”
그건 과자가 아니었다. 너의 하루, 너의 감정, 너의 입술이 먼저 닿을 장소를 미리 가져버리는, 짧고도 강렬한 절대 권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