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23년 전 담임, 지금도 나를 벌하는 이유

교실 문 앞에서 그의 목소리가 날 부른다. 여전히 수업 중 발목을 붙잡는 이유, 당신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금기집착권력기억
23년 전 담임, 지금도 나를 벌하는 이유

책상 위에 놓인 낯선 각인

나는 아직도 수요일 오후 세 시면 교실 문 손잡이를 돌린다. 수학책 대신 노트북, 분필 냄새 대신 에어컨 바람이지만 그건 관계없다. 중요한 건 발걸음이 자동으로 이 복도를 찾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이 열려 있을 때마다 뒤에서 들려오는 저음.

이제 그만 들어와, 서연이.

23년 전 이름이다. 칠판 옆에 서 있던 그는 늘 나를 가장 마지막에 불렀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떠나면, 마치 남겨둔 복수책처럼 나를 불러놓고는 교실을 반바퀴 돌게 했다.

너는 왜 항상 모자를 벗고 들어오지?
교실은 네 방인가, 서연이?

그때마다 제자리에 내려놓은 모자는 머릿속에 남은 생각들처럼 흐릿해졌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뒷목이 당겼다. 스무 살이 넘은 지금도, 면접장 앞에서, 멋진 선배에게 다가가려던 그 순간마다 뒷목이 당긴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욕망의 각도

선생님은 내가 아직도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는지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도 그걸 기다리는지.

그가 서 있던 각도를 기억한다. 칠판과 책상 사이, 60도쯤. 시선이 딱 내 위치를 겨냥했던 지점. 그가 수업 중 툭 던진 말 한마디,

서연이, 너 오늘도 질문 안 할 거지?

친구들의 웃음소리보다 강렬했다. 그건 지적이 아니라 관심의 방식이었다. 17살은 이상했다. 어른의 관심이 무조건 좋아야 하는 걸로 배웠건만, 이건 다르더라. 스치는 시선조차도 벌레처럼 붙잡힌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떠난 뒤, 그가 다가와 내 볼펜을 집어 들었다.

네 필기는 왜 이렇게 더럽니? 
선생님, 이건 중요한 거예요.
중요한 걸 왜 남들이 알아볼 수 없게 써? 다시.

빈 교실에서 혼자 필기를 다시 쓰며 나는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몰랐다. 손끝이 떨렸다. 그가 뒤에서 서 있었다. 숨소리가 느껴졌다. 아니,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느껴지길 바랐다.


실화처럼 픽션 두 편

사례 1: 유진의 교무실

유진은 32세, 5년 차 대기업 비서실. 아직도 상사가 부르면 교무실 뒷문을 떠올린다.

점심시간, 부장이 유진의 자리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 키를 잡고 있던 유진의 손이 멈췄다.

유진 씨, 잠깐 나와줄래?

회사 복도는 교실 복도처럼 길었다. 부장의 뒷모습이 담임의 뒷모습처럼 컸다. 교무실 대신 회의실 문이 열렸다. 끝나지 않은 보고서 때문이었다. 부장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유진은 15년 전 담임이 교무실에서 시험지를 넘기던 날을 떠올렸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아니?
…몰라요.
모르면 더 오래 있어야지.

그날 유진은 교무실에서 2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 시간은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누구도 앞질러 가지 못하게 했던 시간. 부장이 마지막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너는 항상 마지막에 남는구나.

유진은 그 말에 울컥했다. 누군가 아직도 그날의 자리에 서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


사례 2: 민서의 녹음기

민서는 29세, 스튜어디스. 매일 밤 그의 녹음을 듣는다. 13년 전 담임이다.

민서는 휴대폰에 47개의 녹음 파일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기내에서 손님이 없는 3분 틈에,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민서야, 너는 왜 항상 뒷자리에만 앉니?
눈이 마주치는 게 싫어요.
그래서 나를 피하는 거야?
…
앞으로는 내 눈을 봐야 해.

그의 음성을 담은 파일은 45초다. 45초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다. 17살 민서는 교실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 지금 29살 민서는 비행기 뒷문을 통해 들어온다.

왜 아직도 그 목소리를 듣는 걸까.

녹음 끝자락에서 민서는 늘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볼륨을 조금 높인다. 남자 승무원 동료가 지나간다. 민서는 귀를 막는다. 그래도 흘러나온다.

민서야, 이제 나와 눈 맞출 시간이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어린 시절의 특별한 시선은 중독이다. 엄격함, 벌, 냉정함. 끝내 선택받았다는 착각. 그날 교무실에서, 시험지 앞에서, 그는 나를 단독으로 불렀다. 아이는 이런 관계를 사랑한다.

중요한 건, 선생님은 나만 본다는 착각. 실제로 그는 28명을 다 봤지만, 나는 그 중 하나라도 아닌 나만을 봤다고 기억한다. 이 착각이 가장 오래 간다.

지금도 나는 그 흔적을 찾는다. 회의실 뒷문, 야간 비행기, 클럽 뒷자리. 누군가의 냉정한 시선이 내게 닿길.

이 욕망은 결국 벌받고 싶은 욕망이다. 아니, 벌받았다는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 그날의 떨림이 다시 오지 않아도, 그 떨림을 기억하는 나를 누군가가 기억해 주길 원한다.


마지막 문 앞에서

당신도 아직도 그 문 앞에 서 있나요? 닫혀 있어도, 열려 있어도, 누군가 당신을 불러 세우길 바라는 그 문 말이다.

23년이 지났건만, 나는 여전히 그 문을 두드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도, 그 문은 나에게 열려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곳에서 벌을 서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죠?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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