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첫키스를 했건만 나는 아직 ‘처음’이라고 숨쉰다

첫순간을 갈망하면서도 이미 엉켜버린 욕망의 무게, 그 뜨거운 아이러니를 들춘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거짓과 진실, 그리고 우리가 왜 그토록 순수를 연기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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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정말 처음이야"

카페 지하 벽돌 계단 끝. 민우가 나를 떠밀듯 끌고 내려갔다. 담배 연기 뒤섞인 숨소리가 먼저 왔다. 그러고는 문득, 뺨이 바람에 스친 듯 덜덜 떨렸다.

이건 아니야. 나는 처음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키가 제법 큰 민우가 고개를 숙였다. 찬란한 손전등 하나가 우리 사이를 비췄다. 그 순간, 민우의 손끝이 제 살결을 더듬었다. 너무 따뜻해서 눈을 감았다.

열다섯 살, 아직 봉인되지 않은 첫순간이 죄악처럼 터졌다.


겉으론 뻔뻔, 안은 떨림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민우의 입술이 내 윗입술을 덮는 0.3초 동안, 내 몸은 일제히 회로를 셧다운됐다.

‘이건… 진짜 처음이면 어떡하지? 아니, 아니야. 나는 이미 여러 번 봤잖아. 영화에서, 소설에서, 친구들 얘기 속에서.’

그런데도 가슴이 철렁했다. 왜냐고? 순수라는 단어가 내게서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짜 처음이야?
…맞아.
그럼 눈 감아.

눈을 감자마자 더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곤 민우의 숨결이 내 속으로 들어왔다. 달콤한 멜론 향이 났다. 담배 맛도, 커피 맛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맛.


세 명의 ‘나’가 춤을 춘다

  1. 겉치레의 나: “그래, 뭐 어때. 대학생 민우랑 키스 한 번 했다고 인생이 뒤집어지진 않아.”
  2. 속사정의 나: 새까만 도장이 찍혔잖아. 이제 첫키스 페티시를 어쩌지?
  3. 동공 지킨 나: “괜찮아. 아무도 몰라. 너랑 나만의 비밀로 남길래.”

세 명이 뒤엉켜 밀고 당겼다. 민우는 그 와중에도 부드럽게만 움직였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내 눈가를 스쳤다.

너도 처음이고 싶었구나.

그 순간, 민우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너무 다정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처음은 결국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실제 같은 이야기 1: 혜진, 24세

혜진은 남자친구 ‘재영’과 37일째 썸을 탔다. 그녀는 매번 데이트 끝 버스정류장에서 목을 길게 빼며 재영의 반응을 살폈다.

오늘은 키스할까 말까.
아니, 기다려야지. 첫순간은 특별해야 해.

그러나 재영은 늘 손만 흔들었다. 혜진은 속으로 계산했다. 살짝 미소 지으면 4초, 눈을 깜빡이면 2초, 입술을 살짝 벌리면… 0초.

그날도 0초였다. 재영은 대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너무 늦었네. 내일 뵐게.

혜진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껐다 켰다. 유투브 알고리즘이 ‘첫키스 꿀팁’ 영상을 내던졌다. 그녀는 영상을 스킵했다.

수면제 대신, 잃어버린 첫순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실제 같은 이야기 2: 도윤, 27세

도윤은 6개월 전 회식 자리에서 선배 ‘세진’에게 첫키스를 했다. 정확히는 선배가 했다. 술집 뒷골목 담벼락, 그녀의 손이 도윤의 허리를 붙잡았다.

처음이야?
…네.
그럼 기억해 둬. 내가 너의 첫 연인이라고.

세진은 웃으며 사라졌다. 다음 날, 도윤은 입술이 부르트도록 질문했다.

‘그게 진짜 첫키스였을까? 아니면 나는 이미 술집이란 공간에서 “처음”의 의미를 뺏겼을까?’

회식 후 다음날, 세진은 능글맞게 도윤의 어깨를 툭 쳤다.

어제 실수였어. 미안.

그 순간, 도윤의 몸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첫이라는 단어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왜 우리는 처음에 집착하는가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 버그는 ‘처음 경험’을 ‘도화선 효과’라 부른다. 첫 스위치가 켜지면 뇌는 그 기억을 사진처럸 끈질기게 보존한다.

그러나 우리가 놓친 것은 하나다.

첫순간은 조작 가능하다는 것.

순수가 아닌, 연기처럼 조각낼 수 있는 순간이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되돌리고 싶지. 아니, 더 앞으로 당기고 싶지.


하나 남은 문장

그날 밤, 민우에게서 돌아온 마지막 메시지는 이랬다.

너랑 나 둘 다 첫키스 아니었네. 그래도 처음이라고 우기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이 꺼지자 어둠 속에서 입술을 만졌다.

그곳에는 아직 키스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처음’이라 부르며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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