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48kg, 그래도 거절당한 밤
밤 11시 47분.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현주는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숨을 삼켰다. 오늘은 되겠지. 지난 6개월간 매일 아침 5km 뛰고, 저녁엔 고작 두 숟갈만 떠먹으며 만든 48kg의 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와 날렵한 어깨선. 그래도 오늘은 되겠지.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침실에서 TV 소리가 새어나왔다. 남편 성민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주는 침대 옆 스탠드 불을 껐다. 은은한 조명이 그녀의 허리 곡선을 드러냈다.
"오늘 좀 일찍 자지?" 성민은 대답 대신 눈을 깜빡였다. 그게 전부였다. 현주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 올렸다. 성민의 발가락이 피했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현주의 몸은 굳었다. 48kg의 몸, 그 모든 굶주림이 무색하게도.
몸의 경계선이 된 결혼 20년
'내가 뚱뚱해서였나. 그래서 안 되는 건가.'
현주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질수록, 그녀의 머릿속에선 칼로리 계산이 빠르게 돌았다. 한 입 먹으면 30분 더 뛰어야 한다. 뱃살이 나오면 그날 밤은 확실히 끝이다.
이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현주에게 금기였다. '마흔다섯에 홀로 남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더 깎아냈다. 얼굴은 홀쭉해졌고, 손에 든 반지는 헐렁거렸다. 엄지로 돌려 맞추면서도 남편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공통된 전략
"나도 그랬어. 45kg 찍었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딴청이었지." 현주는 지난주 우연히 만난 친구 수진에게서 이 말을 들었다. 수진 역시 5년째 별거 중이었다. 남편은 외도를 했다. 수진은 그걸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다. 뱃살이 그 원인이라고.
"근데 말이야..." 수진이 속삭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사람은 뚱뚱한 여자를 만나고 있더라고."
현주는 순간 숨이 막혔다. 왜 굶었을까. 왜 뼈만 남기려 했을까. 그녀들은 서로의 눈에서 똑같은 물음을 보았다. 내가 이것도 아니면 뭘 더 해야 하나.
권력의 뒤집기
사실 남편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여자들이 왜 굶는지, 왜 애쓰는지. 그들은 그걸로 권력을 쥐었다. 눈빛 하나로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았다. 거절은 곧 지배였다.
현주는 이제야 깨달았다. 남편의 눈빛이 식은 건, 그녀가 뚱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날쯤이었기 때문이다. 힘겹게 만든 48kg의 몸은, 남편에게 또 다른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더 바라지도 못하게.
거울 앞의 마지막 질문
오늘 밤도 현주는 홀로 침대 옆에 앉아 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 광대뼈가 튀어나온 48kg의 몸. 그리고 여전히 뒤돌아선 남편의 뒷모습.
'내가 이 몸을 위해 버린 건, 과연 뚱뚱함이었을까.'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단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다. 너는 과연, 누구의 몸을 굶겨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