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6년 전 그녀가 소주 한 병을 비운 뒤, 샤워를 두 번 했던 이유

6년 전 아내의 떡볶이집 뒤풀이, 그리고 3시간 25분의 공백. 뒤늦게 밝혀진 불륜의 진실 앞에서 남편은 과거의 배신이 아닌 자신의 끝나지 않은 집착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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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그녀가 소주 한 병을 비운 뒤, 샤워를 두 번 했던 이유

"야, 너네 집 민정이 떡볶이집 뒤풀이에서 소주 한 병 다 비웠대?"

철수 형이 술 한 잔 하자며 건넨 말 한마디가 뇌리에 쥐눌려버렸다. 민정이 아내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소주를 거의 못 마신다. 신혼 초, 나는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며 놀란 적이 있다. 손가락 반만큼의 소주이면 눈꺼풀이 축 늘어지던 사람이.

나는 카카오톡 대화방을 쭉 올려봤다. 2018년 3월 14일 밤 11시 47분. '오늘 뒤풀이 간단하게 하고 들어갈게'라는 아내의 마지막 메시지. 다음날 새벽 3시 12분에야 '도착했어'라고 답장이 왔다. 3시간 25분.

그때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회사 떡볶이집이 차로 15분 거리였다.

시간을 먹는 발견

어젯밤, 철수 형이 말했다. "민정이 그날 우리 과장이랑 같이 택시 탔잖아. 둘이 좀... 눈 맞았나봐. 나중에 사내에서 말 좀 있었어."

내 심장이 멈췄다. 6년. 2190일. 이혼 후에도 우리는 친구처럼 지냈다. 아이들 아빠 엄마로서. 심지어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케이크를 썼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딸기를 먼저 내 접시에 올려줬다.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내가 믿어온 것들 중 무엇 하나 진짜였나.

뒤늦게 찾아온 타임머신

나는 텀블러에 남아있는 그녀의 립스틱 자국을 찾아봤다. 이혼 후에도 못 버린 우리의 침대 시트. 키친 수납장 한쪽에 놓인 우리의 러브락커. 6년 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그날 아침, 민정은 샤워를 두 번 했다.

그 사실이 번쩍였다. 신혼 초 민정은 회사 뒤풀이 후 꼭 샤워를 했다. '술 냄새 싫어서'라고 했는데. 그날은 두 번 샤워를 했던 이유가 뭘까.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남자의 향수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아직도 그녀가 남겨둔 머리끈이 있었다. 파란색 실크 머리끈. 2018년 생일에 내가 선물했던 것. 그녀는 이걸로 머리를 묶고, 6년 전 그날 밤 누구와 함께 숨을 멈췄을까.

다른 남펱들의 이야기

"저도 3년 만에 알았어요. 아내가 제가 출장 간 사이에 전 남자친구랑..."

커피숍에서 만난 상훈 씨는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시간째 돌리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알고 나니까 그때 아내가 제게 '오늘은 좀 피곤해서 먼저 잘게'라고 했던 게 전부 거짓말이더라고요."

상훈 씨는 아내가 새벽 2시에 들어와 화장실에서 30분을 보냈던 것도 기억났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했죠. 근데 아니었어요. 샤워를 하고, 양치를 하고, 향수를 뿌리고..."

그녀의 욕망, 나의 집착

우리는 왜 과거의 불륜에 이렇게까지 몸서리치는가.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녀는 나와 헤어졌고, 나도 다른 사람과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고통은 왜 나의 것인가.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를 '지연된 배신 경험'이라고. 뇌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6년 전의 사실이 오늘 당신을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이건 반만 맞는 말이다. 진짜 아픈 건, 내가 그녀를 아직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혼서류는 끊었지만, 나는 그녀의 과거마저도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추억, 그녀의 잘못, 그녀의 후회까지도.

떡볶이집의 진실

그날 밤 민정이 마신 소주 한 병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녀 스스로 마신 걸까, 아니면 누군가 따라준 걸까. 그녀는 내가 좋아하던 떡볶이를 먹으며, 같은 시간에 나는 무엇을 먹었을까. 아마도 라면 하나를 끓여먹으며, '민정이 오면 같이 먹자'고 남겨두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휴대폰을 들었다. 이혼 후에도 연락처는 살려뒀다. 지난주에도 '아이들 아빠'로 저장된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오늘 수진이 학교에 안 왔대. 혹시 네가 데려다줬니?'

그때도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반가워했다. '아직도 우리는 가족이야'라는 착각을.


이제 나는 이 고통이 누구의 것인지 안다. 이건 민정의 죄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그녀를 내 것이라 믿었던 나의 착각이다. 6년 전 그녀는 내게 속았고, 6년 후 지금 나는 내게 속았다.

당신은 누구의 고통을 지금 느끼고 있는가. 과거 사랑의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끝내지 못한 자신의 집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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