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가던 날, 지수는 냉장고 위에 놓인 반 쪽짜리 생일 케이크를 천천히 포크로 떠먹었다.
서른 여섯, 아이 셋, 주부 10년. 괜찮은 몸매, 끝내주는 요리 실력, 그리고 전 남편이 남긴 차압 통장.
‘이제 아무도 안 찾을 거야.’
이 한마디가 가장 먼저 들렸다. 시어머니, 친구, 회사 동기까지. 모두가 동시에 입을 모았다.
그들은 진짜로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녀가 처음 만난 남자는 오후 2시였다
아이들 학원 보내고 들어오니, 문 앞에 피자 배달원이 서 있었다.
이사 오신 거 알려주셨는데 맞아요?
한 명 먹다 남겼나 봐요, 드실래요?
지수는 그 피자 한 조각을 받아 물었다. 맛있었다. 얼굴은 홍삼 같았다.
두 번째는 금요일 밤, 아이들 재우고 나와 창문 열다가 담배 냄새를 맡았다. 이웃집 베란다에서 나온 건줄 알았는데, 아래층에서 새로 이사 온 남자였다.
혼자 키운다고 들었는데, 육아는 어때요?
그가 물었고 지수는 대답했다.
처음 한 달은 하루가 일 년 같았어. 근데 지금은 하루가 한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자면 제가 돼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한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궁금한데요.
욕망은 복수보다 먼저 왔다
지수는 사실 복수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전 남편이 새 아내와 행복하든 말든, 그건 상관없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왜 이제야 느끼는 거지?’
남편과 있을 때는 몰랐던 감각이었다. 작은 손길 하나, 시선 한 번에도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아이 둘 낳고도 그녀의 몸은 원래 그런 몸이었다. 다만, 누군가를 위해 참고 살았을 뿐.
첫 번째 사례: 유리의 거실
유리는 41세에 이혼했다. 남편은 사업 실패로 빚을 남기고 도망쳤다. 친정엄마는 “이제 너도 끝났네”라며 한 달 만에 등 돌렸다.
그런데 유리는 3개월 만에 연락이 끊겼다. 이웃들이 보기엔 공부방 알바로 빠듯이 살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오후 4시면 퇴근했다. 아이들 학교 앞 카페에서 30대 디자이너를 만나, 저녁 7시면 떡볶이 집에서 40대 회계사를 만났다. 밤 11시면 아이 재우고 나서 29세 PT 트레이너에게 문자했다.
유리는 나중에 지수에게 속삭였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잃은 게 없어. 단지 전 남편이 가진 거 다시 찾은 거야. 내 몸, 내 시간, 내 선택 말이야.
두 번째 사례: 혜진의 주말
혜진은 38세에 이혼 후 5년째 혼자 아들 키운다. 그녀는 ‘잘못 만나면 아이가 상처받는다’라며 3년간 연애를 끊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의 친구 아빠가 학부모 모임에서 그녀를 불렀다.
저도 혼자 키우는데, 아이들끼리 친하잖아요. 같이 놀러 가도 될까요?
그날부터 혜진의 주말은 달라졌다. 아이들이 영화 보러 간 사이, 그녀는 44세 한의사와 차 한 잔을 나눴다. 놀이방에 아이 맡기고는 36세 개발자와 와인을 마셨다.
혜진은 지수에게 말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누가 나를 봐주길 바랐어. 근데 지금은 내가 누굴 볼지 고르는 거야. 이게 맞는 거 같아.
왜 우리는 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는가
사회는 싱글맘에게 ‘불쌍함’이라는 가장 무력하면서도 잔인한 선물을 안긴다. 하지만 그 불쌍함 속에는 끔찍한 역설이 숨어 있다.
‘그녀들은 더 이상 남편에게 충성할 필요가 없어.’
결혼이라는 제도는 보호막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채찍이었다. 이혼 후 그 채찍이 사라진 순간, 여자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자들은 알고 있다. 자유로운 여자는 위험하다는 걸. 그 위험함이 오히려 끌린다는 걸.
마지막 질문
지수는 어젯밤, 새로 생긴 동호회에서 만난 33세 대표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내일 아이들 데리고 점심 어때요? 저도 아들 있어서요.
그녀는 답장을 아직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지수는 아이들이 눈 뜨기 전 20분 동안 누군가의 품에 안기지, 아니면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실지 고민하고 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굳이 선택하지 않은 거였다는 걸, 너희는 언제쯤 알까.